노는(遊)신부의 사순절 ‘함께 걷는 어둠’
사순절 첫 번째 주간 토요일, 걸으며 읽는 마가복음서 (10)
“그런데 거센 바람이 일어나서, 파도가 배 안으로 덮쳐 들어오므로, 물이 배에 벌써 가득찼다.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말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더러 ‘고요하고, 잠잠하여라’ 하고 말씀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서로 말하였다. ‘이분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까지도 그에게 복종하는가?’” (마가복음서 4:37-41)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듯 거세게 이는 풍랑에도 배 한 켠에서 여전히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 그리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이젠 거진 죽어 있는 제자들입니다. 풍랑에는 아랑곳도 없는 천하태평의 예수님, 그리고 그 얼굴에 핏기는 온데간데 없이 이미 사색이 된 제자들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지금 정말 풍랑이 일고 있는 것은 맞는지, 한 그림 속에서 전혀 다른 두 그림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으십니까?”
아무렇지도 않으실리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지금 죽게 되었다는데, 죽을 것 같다는데, 거진 죽었다는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으시겠습니까? 그 배 안에 함께 계시는데, 그 일고 있는 풍랑을 함께 보고 느끼고 겪고 계시는데, 그 모진 풍랑 속 거기 속절없이 흔들리는 배 안에서 걱정과 근심과 불안과 두려움에 오도가도 못하고 동동거리고 주저앉아 떨고 있는 그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으시겠습니까?
제자들이 주님을 버려도 그 주님께서는 그런 제자들을 버릴 수 없으신데, 그러실 수 없다 하시는데, 어떻게 주님께서 아무렇지도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먼저 내 안의 풍랑입니다. 내 밖에서 이는 풍랑은 보이기라도 하고 기상예보라도 있어 배를 띄우든 말든 돛을 올리든 내리든 노를 젓든 말든 할텐데, 내 안에서 이는 풍랑은 보이지도 않고 어디서 언제 시작이 된 것인지 알 수 없고 또 언제 끝이 날지 예상도 할 수 없습니다. 어쩌나 힘겨워하다 그러다 어느새 익숙해지고 둔감해지고, 그러다 밖에서 이는 풍랑에 정신을 빼앗겨 잊은 채, 조금씩 조금씩 커지고 거세지는 내 안의 풍랑에 손을 놓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정말 위험한 것은 그 내 안의 풍랑인데, 그것이 먼저인데, 그리고 사실은 내 안의 풍랑이 내 밖의 풍랑을 만들고 또 더욱 거세게 하는 것인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내 안팎에서 이는 풍랑, 그 풍랑에 힘겨워하는 나를 지켜보시는 분, 이는 풍랑에도 주무시는 듯 조용히 가만히 그러나 밤새 뜬 눈으로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시는 분, 이제나 나를 찾을까 저제나 나를 부를까 하며 나를 기다리시는 분. 그 분이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주님, 살려 주십시오.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풍랑 속 다급하게 주님을 깨우던 제자들을 나중에 주님께서 찾으실 것입니다. 세상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듯 거칠고 거세게 이는 풍랑 속에서 주님께서 저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정말 다 죽게 생겼는데, 정말 다 죽는데, 그 풍랑이 이는데, 그것이 정말 풍랑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잠에 빠진 제자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이렇게 너희는 한 시간도 나와 함께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마태복음서 26:40-41)
그러나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 육신이 마냥 약하지만은 않습니다. 원하는 마음이 없어 육신이 더욱 약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없어 육신이 강한 듯, 강해진 듯 할 때도 있습니다. 마음이 있어도 없어도 그만, 없으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육신이 강해졌다 여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때, 내가 약하다 느끼고, 내가 강하다 느낄 그때 나에게 물어볼 일입니다. 나는 지금 깨어 있는가, 살아 있는가, 아니면 지금 나는 죽어 있는가?
“왜들 무서워하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내 안에 계신 듯 아니 계시고, 아니 계신 듯 계신 주님, 그 주님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 내 안에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그 믿음을 어서 깨우라고, 깨어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를 정말 찾고 싶다면 나를 정말 깨우고 싶다면 그리고 너도 이 풍랑에서 정말 깨어나고 싶다면 나에게 말을 하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난 이미 너의 안에 깨어 있어 항상 너와 있으니, 어서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깨어 기도하는 것, 그것은 내가 깨우는 믿음이고 그래서 다시 나를 깨우는 믿음입니다.
늘 깨어 내 안에 계신 주님, 내 안에 계셔 늘 깨어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 그 주님을 향한 나의 깨어 있는 믿음, 그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 간절히 깨어 하는 기도가 있어, 나의 안에 때때로 이는 풍랑은 찻잔 속 풍랑일 수 있고, 그래서 내 밖에 거세게 이는 풍랑에도 나의 배는 가야할 그 곳을 향해 잘 가고 있음을 아는 나는 그 바깥에서 이는 풍랑 속에서도 고요히 잠잠히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가야 할 그 항구는 지금 여기 일고 있는 풍랑 저 너머 보이지 않는 곳이 아닌 이미 여기 나의 배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엄마의 따뜻한 품 속의 아기, 거세게 이는 파도와 부는 바람과 내리치는 비에도 마치 태풍 그 한 가운데 고요함 속에 있는 듯, 엄마의 심장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가만히 있을 수 있게 하는 믿음, 분명 그 믿음은 네 안에 있으니, 네 안에 내가 있으니 두려워말고 무서워말고 깨어 기도해라, 안팎의 풍랑 속 정신없는 나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고요하고 잠잠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