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홀

카를로 로벨리의 화이트홀 이야기를 통한 육아 지혜 배우기

by 노정희

강한 중력으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있다면, 모든 것을 뱉어내는 화이트홀이 있다. 화이트홀은 블랙홀과 반대로 모든 것을 밖으로 방출하며, 외부에서 진입이 불가하다. 화이트홀은 아직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카를로 로벨리의「화이트홀」에서는 화이트홀이 블랙홀의 반대편 출구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빅뱅 이후 우주공간 속 수소구름은 수축되어 별이 된다. 수소가 모두 연소되어 팽창이 멈추면, 별은 자체 중력을 버티지 못하고 압축되어 블랙홀을 만든다. 이 별이 가진 에너지는 호킹 복사*로 인해 점점 사라진다.


블랙홀 속 별은 에너지를 계속해서 소진하여 점점 더 압착되어 블랙홀의 시공간 구조를 깔때기 모양으로 왜곡시킨다. 계속된 압착으로 최소 크기인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면 압착을 멈춘다. 이 지점이 바로 블랙홀의 특이점(Singularity)이다. 특이점은 블랙홀 중심의, 밀도와 중력이 무한대가 되는 지점이다. 수학적으로는 시공간이 찢어지는 지점이라서 기존의 물리 법칙이 더는 적용되지 않는다. 블랙홀이 계속된 압착으로 플랑크 스케일에 도달하게 되면, 고전역학을 위반하는 양자역학의 영역에 진입하게 된다.

(*플랑크 스케일 : 우주의 가장 기초적인 단위,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 이론이 동시에 적용되어야 하는 영역)


플랑크스케일에 도달한 별은 양자터널*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양자도약을 한다. 여기서 점프하는 것은 입자가 아니라 시공간 그 자체이다. 공간이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양자도약하는 것이다.

(*양자역학에서는 에너지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입자가 고전적으로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지나갈 수 있다. 입자가 파동이기 때문이다.)


이 세계가 바로 화이트홀이다. 블랙홀에서 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물질이 화이트홀에서는 바닥을 딛고 다시 위로 반등한다. 동시에 시간과 공간의 구조도 다시 팽창한다. 마치 블랙홀 안에서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처럼, 화이트홀은 블랙홀이 여정의 끝에 도달해 공처럼 튀어 올라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이전에 지나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다.


화이트홀은 역전된 블랙홀이라고 볼 수 있다. 블랙홀이 '無'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이트홀로 전이한다. 블랙홀은 들어갈 수는 있어도 나올 수는 없다. 반대로 화이트홀은 나갈 수는 있지만 들어갈 수 없다. 그러나 화이트홀은 초기 블랙홀의 크기만큼 크지 않고 작은 상태에 머문다. 이 작은 상태의 화이트홀이 우주에 가득 차있는 암흑물질의 일부가 된다. 결국 블랙홀로 들어갔던 모든 것은 하이트홀로 완전히 빠져나와 돌아온다.


이것은 카를로 로벨리가 책「화이트홀」에서 그린 우주의 생애이다. 빅뱅이 우주의 시작이 아니라 그 전의 우주의 붕괴로 만들어진 화이트홀의 '빅 바운스'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주가 시작되고 블랙홀을 거쳐 화이트홀로 순환하는 과정이 불교에서의 윤회와 비슷해 보인다. 우리도 우주의 일부이기에 죽음은 한 인간의 끝이 아니라 우주에 연결되어 지속해 나가는 하나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화이트홀은 시간이 거꾸로 된 블랙홀이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시간'이다.


질량은 공간과 시간을 왜곡시킨다. 공간과 시간의 휘어짐으로 인해 물체가 지구를 향해 떨어지고, 행성은 태양주위를 공전한다. 공간과 시간의 휘어짐의 결과가 바로 중력이다.


중력이 강한 곳은 중력이 약한 곳보다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른다. 따라서 외부에서 보면, 어떤 물체가 블랙홀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느려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지평선에 도달할 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보이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그 물체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지평선을 통과하고 중심으로 떨어진다. 중력으로 인한 시간왜곡이다.


블랙홀은 질량이 고도로 집중되어 강력한 중력이 작용된다. 따라서 블랙홀 안의 시간, 블랙홀 밖에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즉 시간은 관점에 따라 다르다. 시간이란 결국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세계는 시간들 사이의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우리는 시간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최신 물리학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보편적인 시간은 없다.


카를로 로벨리는 우주를 연구하는 것은 우리가 실재와 관계를 맺기 위한 방식이라고 한다. 우리가 사물과 근본적으로 하나임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또 하나, 카를로 로벨리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이 바로 과학의 아름다움이라고 이야기한다. 살면서 나의 주장을 철회하는 것이 마치 부끄러운 일인 듯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내가 그전에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다고 스스로 인정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연구자이기에 이런 경험이 있다. 또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 앞에서 내가 잘못했음을 인정해야 할 때가 있었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늘 옳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하지만, 때로는 나의 말이나 판단이 틀릴 수 있다. 그럴 때 아이들 앞에서 "엄마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진짜 배움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순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과학이 그렇듯, 육아도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 배움과 성장의 여정이라는 점에서 닮아 있다. 이런 깨달음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부모로서의 태도에 대한 나의 인식에 변화를 주었다.



아이 앞에서 실수를 인정하는 용기는
아이에게도 자신의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가르쳐준다.


이것이야말로 과학이 내게 가르쳐준 겸손이, 육아라는 삶의 현장에서 진짜 지혜로 작용하는 순간이다. 최고의 과학자는 (아인슈타인처럼) 자신의 주장을 자주 철회하는 사람이라고 카를로 로벨리는 말한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비약적인 발전은 기존의 이론을 철회하고 새로운 이론을 받아들일 때 이루어졌다.


진짜 어려운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게 아니라 당연히 받아들인 오랜 믿음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스스로 맞다고 확신하는 것, 이것이 배움을 방해하는 큰 벽이다.


이것은 내가 연구자로서도, 부모로서도 내가 기억해야 할, 카를로 로벨리로부터 배운 지혜이다.




<참고>


*블랙홀은 그 주변의 별들도 모두 빨아드리는 데, 이때 별들의 음의 에너지 성분이 들어가 블랙홀 속의 별이 가진 양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이 과정을 호킹 복사라고 한다.


*루프 양자 중력(Loop Quantum Gravity, LQG) : 양자역학과 일반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려는 이론. 일반 상대성이론은 중력을 잘 설명하지만, 양자 수준에서는 설명을 못함.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를 정확히 설명하지만, 중력을 설명하지 못함. 이 두 이론을 통합한 것이 양자 중력 이론이며, 그중 하나가 바로 루프 양자 중력임. 루프 양자 중력에서는 시공간 자체가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단위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함. 마치 직물이 실로 짜여 있는 것처럼, 시공간도 **작은 루프(loop)**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이론. 공간도 양자화(quantized)되어 있어 무한히 나눌 수 없음. 시공간은 불연속적인 구조로 되어 있으며, 매우 작고 정해진 최소 단위(플랑크 길이 등)를 가짐. 블랙홀이나 빅뱅에서 특이점이 생기지 않도록 시공간 구조가 "받쳐주는" 역할을 함. 루프 양자 중력에 따르면 특이점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음. 블랙홀 중심에서는 시공간이 찢어지지 않고, 어떤 양자 구조에 의해 버텨지거나 반사됨. 즉, 블랙홀 내부에서 "양자 중력 효과"가 작동하여 무한대가 아닌 유한한 밀도로 물질이 압축될 수 있음.


*양자역학 방정식은 공간 속의 물리 시스템이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점프할 확률을 계산하지만, 루프양자중력 방정식은 공간이 한 구성에서 다른 구성으로 점프할 확률을 계산한다.


*블랙홀의 지평선(Event Horizon)은 블랙홀 주변에 존재하는 일종의 경계선이다. 이 경계를 넘으면, 그 어떤 물질이나 빛도 다시는 블랙홀 밖으로 나올 수 없다. 지평선 안쪽의 중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지평선을 넘어선 모든 경로는 결국 특이점으로 수렴하게 된다. 블랙홀 안에서는 특이점이 시간의 끝처럼 작용한다. 다시 말해, 어떤 물체든 블랙홀 안으로 들어가면 특이점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되며 특이점 방향이 시간의 미래 방향이 된다. 그래서 블랙홀의 특이점은 지평선 안에서 모든 관측자의 미래가 된다. 특이점의 영역, 즉 양자 영역은 미래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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