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인 3종을 향한 하프 마라톤 출전기
철인 3종에 나가고 싶다..
올해 초 아들이 무심코 던진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옳거니 하고 기쁘게 잡았다. 철인 3종은 나의 버킷 리스트에도 있는 목표다. 언젠가는 꼭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철인 3종은 사이클, 수영, 마라톤을 연속해서 수행하는 경기이다. 아들은 사이클(지금 자전거에 미쳐있는 중 2 픽(픽시)도(폭도)..다.)과 수영에 자신 있다 보니 한번 나가보고 싶어 했다.
찾아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진 아이언맨 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풀코스)와 하프 아이언맨 코스 외에도 이보다 짧은 올림픽거리(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나 스프린트(수영 0.75km, 사이클 20km, 마라톤 5km)도 있다. 이외에도 3 종목 중 2 종목만 참여하는 듀에슬론(사이클 + 마라톤)이나 아쿠아슬론(수영+마라톤)도 있다.
거기다 코스 별로 기록을 재지 않고 완주만을 목표로 하는 슬로우 철인 3종도 있다. (철인 3종 가족 릴레이도 있는데, 남편보고 같이 나가자고 했더니 이혼하고 싶냐고 했다. ;;;;;;;) 처음에는 짧은 코스로 도전해서 점점 난이도를 올려보는 방식으로 차근차근 도전한다면 철인 3종이 마냥 아주 먼 꿈같은 목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철인 3종을 위해 나는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매일 조깅을 하고 있으니, 마라톤부터 시작하여 수영과 사이클 순으로 차근차근 도전해보려 한다. 무엇보다도 철인 3종을 완주하려면, 먼저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찰나, 어느새 내 손은 마라톤 대회 참가 신청을 마치고 결제까지 끝내고 있었다. 나와 큰아들뿐만 아니라 둘째와 남편까지..
나와 큰아들은 조깅을 꾸준히 해온지라 하프 마라톤을 신청했고, 초4인 아들과 남편은 5km를 신청했다. 남편은 둘째 아들을 챙겨야 하기 때문에 5km를 뛰어야 한다고 했다. 맞다. 둘 중에 한 명은 아이를 챙겨야지.
막상 대회를 신청하니 마음가짐이 남달라 졌다. 예전에는 시간은 신경 쓰지 않고 달렸는데, 컨디션이 좋은 날은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보폭이나 케이던스를 늘려보는 연습도 하게 되었다. 조금씩 뛰는 거리를 늘렸고, 주말에는 하루에 2~3번 달렸다. 평일 퇴근 후엔 집에 도착하자마자 30~40분 달린 후 저녁을 먹었다. 약 1~2달간 준비를 착실하게 했다.
그리고 드디어 대회날이 되었다. 결혼 전 20대에 나는 마라톤을 했었다. 첫 도전을 풀코스로 나갔는데 33km 지점에서 포기했었다. 이후 하프는 3번 정도 완주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거의 20년 만에 하프 마라톤에 재도전하게 되었다.
드디어 대망의 3월 23일 금산마라톤대회 당일, 나는 아이들과 나의 발목에 유튜브를 통해 열심히 배운 테이핑을 했다. 준비는 끝났다.
출발 신호와 함께 달리기 위해 첫 발을 떼는 순간 무수히 많은 사람과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린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설레었다.
사람들과 함께 달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러닝이 힘들지 않았다. 그동안 매일매일 꾸준하게 달렸던 힘 덕분인지 숨이 크게 차지도 크게 지치지도 않았다. 중간중간 서서 스트레칭을 한 것 외에는 계속해서 달렸다. 마지막 1km는 속도를 내서 달렸다. 나는 요가수련을 위해 틈틈이 근력운동을 해왔다. 힘들게 하체운동을 했던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더 힘이 났다. 내가 이 근육들을 어떻게 만들었는데.. 깨어나라 나의 근육들아. 나는 마지막 지점까지 속도를 줄이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었다.
기록은 2시간 5분. 깜짝 놀랐다. 그동안 스마트워치에서 쟀던 나의 러닝의 평균속도는 8km/h 수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2시간 30분 이상을 예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들어올 수가! 약 20년 전 20대에 출전했던 마라톤 생각이 났다. (20대가 벌써 20년 전이다. ) 그때보다 체력이 더 좋아졌는지 기록이 더 좋아졌다. 확실히 나는 육아휴직 이후로 젊어진 게(?) 확실하다.
큰아들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했다. 비록 3번 넘어져서 무릎이 까이고 모자는 바람에 날아가서 잃어버렸지만 완주했다. 너무너무 기특하고 대견했다. 기록은 2시간 58분.. 제한 시간 3시간 안에도 들어왔다.
남편과 둘째 아들도 5km를 완주했다. 초4인 둘째는 마라톤을 하는 게 너무 즐겁단다.
마라톤 대회에서는 여러 가지 이벤트를 한다. 왠지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둘째 아들 현수가 경품 추첨을 위해 온 가족의 이름을 써서 응모했다. 먼저 내가 러닝화에 당첨이 되었다. 그다음에 사회자가 필체가 같다며, 왠지 가족인 것 같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큰 아들이 나란히 러닝화에 당첨되었다. 역시 우리 현수는 금손이었다. 전날 기지제 플로깅을 하면서 아이들과 열심히 쓰레기를 주웠는데,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마라톤 이후 1주일 정도 휴식기를 가졌다. 자고 일어났더니 골반과 종아리가 당긴다. 대회가 일요일이었는데 거의 목요일쯤에서야 종아리 통증이 가라앉았다. 나의 종아리가 점점 더 닭봉의 형태가 되어가는 느낌이다. 휴식기 동안은 열심히 먹고 운동은 달리기 대신 파워워킹을 했다. 그리고 주말부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다음 대회는 5월 3일 보성 마라톤이다.
마라톤 이후에 여러 가지 일들이 기억에 남는다. 하프 마라톤을 출전하시는 한 할아버지가 '내가 70대만 되었어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하셨던 게 생각난다. 풀코스를 1등으로 들어오신 분은 마라톤 도전 5년 만에 1등이 되었다며, 너무나 기쁜 표정으로 만세 자세로 들어왔다. 그분이 5년 동안 어떤 노력을 했을지 그려진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보았던, 100세 넘는 일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러닝 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오늘 보았던 최소 80살의 할아버지(내가 70대만 되었어도..)와 그분들을 떠올리며 나도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한 노년을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요가와 꾸준한 근력 운동 덕분에 복근이 더욱 선명해졌는데, 노년에 백발에 크롭티를 입는 상상도 해봤다.
무엇보다도 아이들과 함께 달리는 이 느낌이 너무 좋다. 세대차이는 생각의 차이이다.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에 생각이 다르고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충돌한다. 가능한 한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조금은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눈이 길러지지 않을까? 이러한 기대감을 안고 이번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 기지제 플로깅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