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성문 컬렉터다. 아들들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이후로 잘못을 했을 때마다, 반성문을 쓰게 했다. 그랬더니, 아이들로부터 받은 반성문이 벌써 수십 장이 모였다. 오늘 이야기는 늘 아이들로부터 반성문을 받기만 했던 내가 반성문을 쓰게 된 이야기다. 원래 받는 것이 있다면 주는 것이 인지상정... 은 무슨.. 엄마도 사람인지라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문을 쓴 것뿐이다.
문제의 날 저녁, 나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심술쟁이 엄마라 내가 집안일을 할 때 아이들이 노는 꼴을 못 본다.
엄마가 집안일을 할 때 아이들은 휴대폰 사용, 만화책, TV 시청 외 생산적인 일을 할 것!
우리만의 룰이다. 가족을 사랑한다면, 사랑하는 누군가가 일을 할 때 같이 해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남자애 둘을 키우는 부모라면 느낄 것이다. 휴대폰, 만화책, TV를 보는 게 아니라면.. 아들들이 집 안에서 조용히 있을 리가 없다. 둘이서 놀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싸우다가 큰 애가 작은 애에게 욕을 했다. 그것도 쌍욕을..
우리 애들도 밖에서는 친구들이랑 욕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했었다. 왜냐하면 길거리에서 또래애들과 어울려 다니는 중학생 애들이 욕하는 걸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걸 부모 앞에서 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큰 애가 갑자기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와 동시에 저놈을 제대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
"동생한테 뭐라고 한 거야?"
"..."
" 너 그게 무슨 뜻인지는 아냐? 그건 엄마를 욕한 거야. 엄마를 ㅁ 같은 ㅁ라고 한 거나 다름없어."
"너는 엄마가 얼마나 ㅁ로 보이면 엄마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욕을 할 수 있지? 내가 널 잘 못 키워도 한참 잘 못 키웠다."
아이가 하는 욕을 듣고 내가 아이를 이질적으로 느낀 것처럼 너도 한번 느껴봐라는 식으로 아이 앞에서 욕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반성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래요 나 욕했어요"라고 당당히 나온다. 순간 피가 머리로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내 손이 올라가 아들의 뺨을 후렸다.
그 순간 당당했던 아이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지더니, 자세를 고쳐서 똑바로 선다.
"잘못했습니다."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동시에 후회감이 밀려들어온다.
아이들에게 반성문을 쓰라는 말을 남기고 사우나에 갔다.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안정이 필요했다. 사우나에 있는 내내 생각했다.
나는 아이와의 대화에 실패했다. 내가 아이를 때린 것은 내가 대화에 실패했다는 증거다. 지난 학기 아이의 학교에서 들었던 부모 교육에서 강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와 동시에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른다.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빠에게 맞은 적이 있다. 이 날 나는 내 동생을 때렸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동생에게 무척 화가 났었다.
내가 동생을 때리는 모습을 본 아버지가 나를 한 대 때리셨다. 그날 너무 서러웠던 게 기억난다. 그리고 기억력이 나쁜 내가 35년이 넘은 지금도 맞았던 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만큼
아빠에게 맞았던 것이 나에게는 상처였다.
우리 아이도 오늘 나에게 맞은 것이 큰 상처가 되겠구나. 우리 아빠도 나를 때리시고는 마음이 아프셨겠구나. 사우나에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면서 깊은 반성을 했다. 지금 드는 생각을 반성문으로 남기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집에 돌아가니 큰 아들이 다가와서 백허그를 한다.
"엄마 죄송해요."
"엄마도 미안해. 정말 많은 생각을 했어."
라고 말하면서 외투를 벗는 순간. 내 손목에 있는 사우나 키가 눈에 들어온다.
아들이 놀린다.
"아빠가 아시면 또 엄마 놀리시겠는데요."
"그런데 민제야.. 이 거 내 키 아냐.. 나는 138번이었는데, 왜 8번이 내 손목에 있는 거지?"
순간 나 때문에 벌거벗은 채로 키를 찾으러 다닐 누군가를 상상하니 갑자기 너무너무 미안해진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사과하는 날인가 보다. 사우나로 곧장 가서 키를 반납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혹시나 8번 락커의 주인께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다시 한번 더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엄마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 키를 가져올 수 있어요?"
나도 어떻게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친정어머니가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정신은 꼭 붙잡고 마음은 놓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늘 반대로 사는 것 같다. 불편한 마음 때문에 매번 정신줄을 놓는다.
아이들이 나에게 반성문을 가져온다. 나도 반성문을 써서 아이들에게 보여주었다.
"엄마가 왜 반성문을 써요?"
" 엄마도 잘못했으니 반성문을 써야지."
" 뭘 잘못했는데요?"
" 너희를 야단치면서 나 역시 욕을 했고, 대화로 풀지 못하고 너를 때렸잖아."
그 와중에 아이들은 내 반성문을 보더니 반성문 참 잘 적었다고 칭찬해 준다. ;;;;;
그리고 큰 아이에게 나의 어릴 적 이야기를 해주며 오늘 일이 너에게 상처가 될까 염려스럽다고 했다. 다행히도 아이는 자기가 잘못해서 맞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안 했다고 한다. 엄마를 위로할 줄 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더 미안함이 들었다.
큰 아이는 종종 자신의 잘못을 변명하는 바람에 나와 남편에게 더 크게 혼난다. 나는 그날 큰 아이에게 별다른 말 없이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의 일부를 읽어보라고 권했다. 엄마보다 똑똑하고 경험 많은 데일 카네기 할아버지가 이야기하면 더 잘 듣지 않을까? 앞으로 자기가 잘못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스스로 책을 읽고 깨닫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소제목은 '잘못을 솔직하게 시인하라.'이다.
다른 사람에게 비난을 듣느니 스스로 자신을 비판하는 편이 훨씬 낫다. 자신의 잘못을 알았다면 상대가 악담을 퍼붓기 전에 내가 먼저 앞질러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되면 상대는 풀이 죽어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다.
다음날 저녁 세미나 때 나는 아이들에게 어제의 반성문을 한번 더 적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바로 왜 또 써야 하냐고 불평을 한다.
우리가 반성문을 쓰는 이유는 잘못을 돌이켜보고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 쓰는 거야.
그런데 엄마도 너희들도 계속 잘못을 반복하잖아.
그러니까 반성문도 반복해서 써야지.
다시는 반성문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그리고 나의 잘못을 잊지 않고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브런치스토리에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