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들에 대한 아빠의 소심한 복수극
두 아들과 남편, 그리고 나는 얼마 전 전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하는 비빔밥 축제에 갔다가 행사장 옆에 있는 실내 서바이벌 게임장을 방문했다. 이곳 서바이벌 게임은 물감총이 아닌 실제 사격감을 선사하는 비비탄을 사용한다. 헬멧부터 가슴 보호구, 그리고 탄환의 따끔함을 막아줄 두툼한 군복 상의까지 갖춰 입고 나면 제법 특수요원 같아 보인다. 체험비는 전반 10분/후반 10분에 성인 기준 인당 약 2만 원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평소 이런 체험에 돈 쓰는 걸 아까워하는 남편이 웬일로 흔쾌히 게임을 하자고 한다.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체험 활동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로서는 그저 대환영일 뿐이었다. 그 뒤에 숨겨진 남편의 계획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한 채 말이다.
대진표가 짜였다. ‘엄빠 vs 형제’. 팀이 결정되는 순간, 남편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이상할 정도로 남편이 신나 보인다. 교관 같은 진행요원이 게임 규칙을 설명한다.
“상대 팀의 머리와 몸통에 센서가 있습니다. 그곳을 타격해야 점수가 올라갑니다. 따라서 머리와 몸통에 총을 맞으면 전사합니다. 전사하면 본부로 돌아가 부활 버튼을 눌러야 재참전이 가능합니다. 아시겠습니까?”
그때였다. 남편이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마치 작전 회의라도 하듯 나직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머리랑 몸통 말고, 팔다리를 맞춰야 한다는 거죠?”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니, 이 사람이 방금 뭘 들은 거야? “여보, 머리랑 몸통을 맞춰야 점수가 올라간다니까!”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아니, 그러니까 팔다리를 맞춰야지!”
그제야 깨달았다. 남편의 목적은 애초에 ‘승리’나 ‘점수’ 따위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동안 집안에서 장난꾸러기 아들들 때문에 쌓인 울화와 스트레스를, 확실하게 따끔한 사격으로 승화시키려 것이 남편의 의도였던 것이다. 즉, 오늘의 서바이벌 게임은 남편의 소심하고도 처절한 복수극이다.
처음엔 게임시간 10분이 너무 짧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전장에 투입되자 10분은 상당히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사방에서 날아오는 비비탄을 피해 재빠르게 달려 차가운 엄폐물 뒤에 숨었다. 나름 집중력을 풀가동해 사격 각도를 재다 보니 에너지 소모가 어마어마했다. 이게 뭐라고, 내 위치가 발각될까 봐 심장은 콩닥거렸고, 헬멧 속으론 땀이 흘렀다.
방탄조끼 대용으로 껴입은 두꺼운 옷 때문인지 땀이 흠뻑 젖었다. 긴장감 속에 숨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단순한 게임인 줄 알았는데, 이것은 생존을 건 고도의 유산소 운동(?)이자 심리전이었다.
게임은 냉혹했다. 분명 총을 들고 투입됐는데, 나는 단 한 번의 방아쇠도 당겨보지 못한 채 베이스캠프만 들락날락했다. 이상하게 적군(?)들은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 나만 전사한다. 대체 녀석들은 어디에 숨어서 나만 노리는 걸까.
그때, 내 앞을 가로막은 건 다름 아닌 첫째였다. 이미 전사 판정을 받고 베이스로 돌아가려는 엄마를 향해 녀석은 무자비한 '확인 사살' 총질을 퍼부었다. '아, 내가 저놈을 낳고 미역국을 먹었던가.' 서러움과 열받음이 동시에 밀려오려는 찰나, 구세주가 나타났다.
"엄마 이미 죽었잖아! 그만 쏴!"
둘째였다. 형의 총구를 몸으로 막아서며 나를 감싸는 막내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역시 우리 집 사랑둥이 막내.
'큰 놈... 너 오늘 저녁밥은 없다.'
나는 원래 속은 매우 좁고 뒤끝이 긴 엄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둘째에게는 총구를 겨누는 것조차 마음이 아파 망설였던 나였건만, 나보다 덩치가 커진 첫째의 등판을 향해 조준할 때 느껴지는 그 묘한 쾌감이란. 이것은 단순히 게임으로 인한 즐거움인가, 아니면 복수인가. 아마도 그 중간 어디쯤의 카타르시스였을 것이다.
이 구역의 진정한 포식자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나의 남편, 대한민국 육군, '군필자의 위엄'이 이곳 실내 사격장에서 폭발했다.
남편은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건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데, 아들들은 계속해서 전사한다. '하... 이게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임해야 할 일인가' 싶다가도, 광기에 가까운 신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남편을 보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 게임은 모름지기 진지해야 제맛이지.
반면, 나는 보이지 않는 적들의 맹공에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대체 누가 쏘는지도 모른 채 계속 전사 판정을 받자 결국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눈에 보이는 움직임만 있으면 무작정 방아쇠를 당겨댔다. 그리고 들려온 비명.
"악! 여보! 나를 쏘면 어떡해!!!"
그렇다. 아들놈들은 털끝 하나 못 건드리고, 오직 남편만이 내 눈먼 총알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었다. 역시 세상천지에 내 총질을 다 받아주는 건 남편밖에 없는 것인가. 본부로 부활하러 들어오는 내게 진행요원이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건넨다. "어머님... 아버님 쏘시면 안 됩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저 멀리서 남편이 첫째 아들을 전사시키고도 모자라, 도망가는 아들의 뒤를 쫓으며 추격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군에서 배운 기술(?)이 마침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대단하다'는 감탄과 '굳이 저렇게까지...'라는 안타까움이 동시에 교차했다. 오죽하면 저럴까. 사춘기 아들에게 쌓인 수만 가지 감정을 저 비비탄 한 알 한 알에 실어 보내는 남편의 뒷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비장해 보였다.
사실 남편과 첫째는 어릴 적부터 참 많이도 부딪혔다. MBTI로 따지면 첫 글자 'E'만 빼고 모든 성향이 극단적으로 다른 부자다. 문제는 첫째가 나를 쏙 빼닮았다는 것. 남편 입장에서는 아내라서 사랑으로 넘겼던 그 ‘다름’이, 자신을 닮지 않은 아들에게서는 유독 엄격한 잣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늘 최선을 다하는 아빠였지만, 동시에 엄격했다. 그러나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며 전세는 역전됐다. 아들은 북한의 김정은조차 두려워한다는 ‘대한민국 중학교 2학년 남자아이’다. 어느덧 키도 몸무게도 아빠를 훌쩍 추월해 버린 아들 앞에서, 남편은 권위 대신 존중과 인내를 선택했다.
오늘의 무자비한 사격은 그동안 쌓아온 그 인내심에 대한 소소한 보상이었으리라. 아빠는 합법적인 복수를, 아들들은 아빠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는 전우애를 얻었으니 이보다 완벽한 교육이 어디 있을까.
단 20분의 교전이었지만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결과는 전후반 모두 '엄빠 연합군'의 완승. 역시 대한민국 군필자의 DNA는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승패를 떠나 오늘 이곳의 진정한 승자는 따로 있었다.
비비탄 한 알 한 알에 해묵은 사심과 복수심을 꾹꾹 눌러 담아 쏘아 올린, 세상에서 가장 신나 보였던 바로 그 남자. 우리 집 가장이자 오늘의 에이스, 남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