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금주(金作)205일째
사람에게 주량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모르던 그 시절. 술자리에 왔어요. 꼬리가 있었으면 좌우로 소나기 속 와이퍼 속도 보다도 빠르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을 거예요.
손목이 멀쩡한 것이 신기할 정도로 꺾고 계속 꺾어대다가 결국 화산이 꿀렁꿀렁 웨이브를 타더니 폭발해요. 퐈악하고 분출해요. 그렇게 한번 활동한 화산은 멈추기가 쉽지 않아요. 화산은 피자를 잘 만들어요.
대학시절 축제 날이었어요.
해는 구름 사이사이로 비치고 바람은 커튼이 되어 공중으로 떠오를 것 같은 날씨였어요. 오늘도 손목 운동 할 생각에 몽실몽실 더더 붕붕 떠올랐어요. 캠퍼스 중앙 잔디밭에 놓인 낮은 테이블에 앉아 친구들이 오밀조밀 만들어주는 정성의 음식이지만 정성이 하나도 안 들어간 것 같은 잔디인지 부추인지 모르는 초록색전을 먹으며 손목운동을 시작했어요.
이날 친구와 꺾은 소주가 11병이었어요. 제가 5병으로 추측돼요. 친구는 집이 멀었어요. 돌아갈 차는 없었고 저의 집으로 같이 가기로 했어요.
저는 시력이 좋아요. 이쩜영.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중 친구의 검은색 뿔테안경을 써보고 싶어 졌어요. 이때 시력이 좋아서 아쉽기까지 할 정도로 모두들 뿔테안경을 쓰고 다녔었어요.
제 코에 뭐를 얹어본 적이 없었던지라 가면무도회에 참석한 사람 같고 신선했어요. 오호라. 잘 보여요. 터널 속 창에 비친 모습이 공부 꽤 하는 진지한 이미지였어요. 입꼬리가 올라갔고 그렇게 안경을 코에 귀에 업고 집까지 왔어요.
다행히 친구는 부럽게도 깊은 잠에 들었고 저는 꿀렁꿀렁 왔어요. 피자가게를 차릴 수 있을 만큼의 화덕피자 아니고 화산피자를 밤새우며 만들었어요.
아침. 엄마는 저를 위해 은색강판에 사각사각 사과를 앞뒤로 갈고 계셨어요.
그런 엄마의 모습에 친구는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어요. "우리 엄마는 피자(진짜피자) 시켜주고 술 먹고 들어와서 이게 뭐냐며 욕 한 바가지 하셨을 텐데" 주방에서 홀로 정성스레 즙을 만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친구 눈에는 새롭게 보였나 봐요. 어쨌든 엄마의 마음은 너무 예쁘고 저도 사랑해요. 하지만 지금은 종류별 피자를 만들고 있어서 바빠요.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이마와 코에 식은땀이 맺히고 다리는 네 개가 되었어요. 다시는 손목꺾기 운동은 하지 않으리라 잠시 다짐해요.
점심때쯤 노란색 피자를 끝으로 화산피자 만들기가 끝났어요. 저는 사랑즙을 입에 적시고 상체를 간신히 일으켜 세웠어요.
소파 위에 어제 쓰고 왔던 친구의 지적변신 아이템이 보였어요. 나름 괜찮았었는데. 다시금 확인하고 싶었어요.
코에 언자마자 뿌연 연기로 자욱해지며 내리막 길이 생겼어요. 잘못 걸린 거친 핸들링의 운전사님의 버스를 탄 느낌이었어요. 다시 피자가... 재빨리 안경을 주인코에 얹어줬어요. "우리 이 눈을 하고 어떻게 집에 온 거야?"...
친구는 시력이 마이너스예요. 저는 친구의 안경을 쓰고 친구는 안경을 벗고. 아직도 미스터리예요. 둘 다 무사히 집에 온 게 용했어요. 팔짱의 힘인 것 같아요.
그때 알게 되었어요. 술은 자기만의 주량이 있고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그렇게 하루에 할 수 있는 손목운동의 횟수를 알아 갔어요. 그리고 몇 달 뒤 저의 주량은 2병이라는 것으로 마무리 지어졌어요.
갑자기 궁금해졌어요. 200일 넘게 금주하는 저의 지금의 주량은 어느 정도일까요? 윷놀이 생각이 나요.
해가 떴다 지고를 반복할 동안 술을 즐길 수 있는 강한 단단한 사람이 되면 그때 한 잔 하고 알려드릴게요.
그날이 올 때까지 충실하게 금주하며 제가 원하는 목표를 위해 앞으로 가고 있어요. 지금은 주량보다, 피자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저는 술을 못 먹는 게 아니에요. 여자 주량 2병. 아주 인기 쟁이였다고요.
해맑금주(황금金창조作)-삶을 해맑게 황금으로 만들기의 첫번째 연재를 마쳐요. 소중한 시간내어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뵈요.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