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어버이날. 벌이가 없어 해줄 것도 없는 막내딸은 그저 카톡과 문자 몇 글자를 남길 뿐이다. 돌아오는 답장은 원망도 책망도 실망도 아니다. 고맙다는 전언. 그 전언에도 여전히 해줄 것이 없는 나는 어버이 이전의 부모님을 생각할 따름이다.
며칠 전 발표된 제3회 오뚜기 푸드 에세이에서 사랑상(장려상)을 수상했다는 메일이 왔다. 결국 오늘 수상 취소해달라는 메일을 보냈으니 이제 더 이상 수상자는 아니지만 어찌 됐든 6,852명 중 69등 안에 들었다.
엄마에게 소식을 전하고 수상 취소해달라고 물어볼까 싶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단히 잘했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고 했다.
내가 장려상이란 말을 듣고, 엄마는 바야흐로 몇십 년 전 중앙일보 독서감상문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전적을 고백했다. 서랍 속을 뒤지는 듯, 전화 너머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제17회 독서감상문 대회라고 했다. 장려상이라서 글은 안 실렸어. 그래도 찾아볼게! 그려그려.
분명히 요즘엔 디지털로 신문 아카이브가 되어 있는데. 중앙일보 옛날 지면, 중앙일보 지난 신문 보기, 중앙일보 아카이브 등의 검색어에도 옛날 지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네이버 신문 라이브러리에는 중앙일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중앙일보 앱으로 볼 수 있다는 홍보 글이 있어 회원가입까지 하고 앱까지 다운받았건만 최근 며칠 간의 지면만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혹시 되려나 싶은 마음에 빅카인즈에 접속했다. 그토록 익숙한 것을 왜 먼저 들어가 보지 않았지? 구구 신문방송 구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현 언론어쩌고학과 소속으로서 빅카인즈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시의적인 기사를 찾을 때나 들어가던 평소의 관행으로 인해 옛날 기사를 검색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상자 목록이 실렸을 거라 중앙일보로 검색을 한정하고 기사 발행일을 전체로 설정하고 엄마 이름 석 자를 검색했다. 검색 결과는 억울할 정도로 쉽게 나왔다.
1990년 10월 25일 중앙 독서 감상문 입상자 명단.
엄마는 19,606편의 글과 경쟁을 했다. 수상자 목록엔 엄마의 이름과 예전에 살던 집 주소가 적혀있다. 나도 인생의 얼마간은 거기에 살았던 것 같다. 응모 요령. 가. 본사가 선정한 추천도서 중 1권을 선택, 감상문을 제출. 추천도서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는데 학생부 추천도서까지만 나오고 뒷부분은 온라인으로 옮기면서 잘린 모양인지 검색되지 않았다.
엄마는 많은 것을 잘하면서 많은 것을 못하는 줄 안다. 가끔, 엄마는 마치 당신이 처음부터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인 양,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은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토대로 볼 때 엄마로서 하는 일마저도 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 어느 시월, 엄마는 당신의 이름 세 글자로 독서감상문의 수상자가 되었다. 그때도 이미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군가의 아내이긴 했지만, 아직은 내 엄마가 아니었을 때. 엄마는 엄마의 이름을 남겼다.
나는 엄마의 엄마 이전의 흔적을 담아 두고, 엄마에게 두고두고 상기시켜 줄 요량이다. 이럴 땐 디지털 세상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당신은 어땠을까? 빛나던 젊음을 짐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