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물밑 Oct 27. 2024

취미란 못할 수 있는 자유

부담감 대신

  나이가 들수록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아는 범위가 점점 커질수록 어른임을 나타내는 지표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적인 것은, 이러한 구분이 매우 정확하고 불변하다는 고집 또한 생겨난다는 점이다.


  엄마는 오래도록 본인이 음치라고 생각했다. 아빠 역시 엄마는 노래할 줄 모른다고 단언했다. 노래 앞에서 주저하던 나 스스로를 인식하는 것, 그리고 주저하던 모습을 보고 형성된 첫인상을 토대로 둘은 그런 식의 신념을 형성했다. 나는, 아내는 노래를 못해.


  노래를 주저함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노래를 못해서도 하나의 이유일 수 있겠지만 난 분명 그 외의 이유로 엄마가 노래를 주저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당시의 분위기가 불편했다든가, 편한 사람들 앞이 아니었다든가, 아니면 처음 해보는 거여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음에 긴장했고 긴장이 만든 불안이 발성을 방해했다든가 하는 식의 이유들 말이다.


  그중에서도 추측건대, 엄마의 완벽주의가 그의 노래를 방해한 가장 유력한 요인일 것이다. 자기 통제 밖에 있는 소리들을 감당하지 못했던 경험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비록 단 한 번일지라도.



  엄마가 노래를 배운다. 못하는 사람이라고 규정지은 시간들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우리 안에 있다. 엄마에게 그것은 노래였고, 동네 음악 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무언가를 배울 때 으레 방어적이게 되기 마련이고, 엄마는 늘 말해왔던 것처럼 선생님에게도 저는 음치예요, 라고 말했다고 한다. 노래를 들어본 선생님은, 어머! 전혀 아닌데요? 목소리도 너무 예쁘셔서 부르시다 보면 노래 잘하실 거예요! 라고 했단다.


  가끔 전화 너머로 전해오는 소식에 의하면, 엄마는 노래 학원에 가는 날임에도“연습도 하나도 안 하고 가기가 싫어져서” 레슨을 취소하고 안 가는 날이 몇 번 있었다. 자기 실력에 대한 의심은 살짝 거두어졌는지 몰라도, 이후 엄마는 노래를 배우러 가는 것에 대한 이상한 압력을 느꼈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엄마를 닮아버린 나는 알 수 있었다. 배움을 회피하고자 하는 엄마의 심정은 부담감에서 온 것이라는 것을.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해내고 싶은 열망이 강렬한 나머지 해내지 못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경험들에 의한 수치를 느끼기 싫은 마음. 그래서 아예 그 민망함과 수치심의 싹을 제거하고자 초장에 그 마음을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땡스북스 점장으로 일하던 손정승 작가의 <아무튼, 드럼>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작가가 즐거움으로 배우기 시작한 드럼에 대한 부담이 점점 커지던 때에 마침, 책방에서 열리는 북토크에 함께 노래하자는 이슬아 작가의 제안이 있었다. 고민해보겠다는 말에 대한 이슬아 작가의 응답에 저자는 드럼을 대하는 자기의 자세를 돌아보게 된다.


 너무 좋은데 고민 좀 해보겠다고 하자 슬아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못하면 어떠냐. 나는 삑사리 나도 좋더라.
그것이 음악이 본업이 아닌 자들의 자유 아니더냐.”
그 메시지를 읽는 순간
요즘의 내게 정말로 필요한 말이었음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손정승 <아무튼, 드럼>  72 


  작가가 본능적으로 필요한 말을 감지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엄마에게 필요한 말이 무엇인지 본능적으로 알았다. 엄마에겐 <아무튼, 드럼>의 전언이 필요했다.


  엄마, 경연 대회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고, 뭐 어때. 삑사리 나도 좋잖아. 그거야말로 직업인이 아닌 사람이 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



  다음날 엄마는 노래 학원에 갔다. 곧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선생님에게 내가 해준 이야기를 전하면서. 막내딸이 책 이야기를 해주데요, 자고로 취미란 못할 수 있는 자유래요. 그래서 연습도 못 했지만 즐겁게 부르러 왔어요. 그거 정말 맞는 말이네요. 오늘도 즐겁게 부르고 가세요!


  엄마에게 단 하나라도 온전히 즐거운 게 있었으면 좋겠어. 나 때문에, 자식 때문에, 손자손녀들 때문에 즐거운 거 말고, 엄마가 할 수 있어서 즐거운 거 말이야.

이전 13화 당신의 빛나던 젊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