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효율 대신
내 머릿속 최초의 효율은 의자였다. 아마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시장 가기 전 큰 도로변에 위치한 배스킨라빈스에 들렸을 때였다. 손님들로 가득했고 저마다 테이블을 잡으려 애썼다. 2명이 앉아 있는 4인석 테이블 옆 2인석 자리에 3명이 와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옆 테이블에 양해를 구하고 의자를 사용하는 대신 사람들이 이미 앉아 있는 테이블과 테이블을 지나고 지나 빈 곳에서 의자를 들고 왔다. 붐비는 사람들을 헤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피해서. 그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비효율적이다'.
그 마음을 품고, 집과 가장 가까운 출구로 나갈 수 있는 지하철 플랫폼 번호를 외우고 다니는 극한의 효율러로 자랐다. 집을 기준으로 오른쪽에서 올 때는 7-1, 왼쪽에서 올 때는 4-3. 동선 낭비를 불쾌하게 여기며, 한 번에 해치울 수 있는 것을 처음부터 꼼꼼히 살피지 않아 여러 번 고치는 것을 싫어한다. 나를 같은 일-조금도 다르지 않은 일-로 계속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과 같은 말을 한없이 반복하게 만드는 사람을 힘들어한다.
이런 인간도 비효율의 힘을 믿는다는 모순을 고백하련다. 나의 가장 대표적인 비효율은... 책을 사는 일이다. 타이핑 몇 번과 클릭 몇 번으로 집 앞까지 배송되는 온라인 서점을 마다하고 오프라인 서점을 찾아간다. 서점은 내게 위로의 공간이자 스트레스 해소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감정과 누군가에게 쏟아내야 할지 모를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책방에 간다. 오랜 시간 빽빽이 꽂힌 서가를 뜯어보며 수많은 책들에게 집중한다. 제목, 표지, 저자 소개와 추천사, 목차, 글의 일부를 살피는 동안 복잡한 생각들은 사라진다. 심할 때는 책방 분위기와 서가의 구성까지 생각하곤 한다. 어떤 책을 사 갈까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는 인간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리뷰를 확인하지 않고 사는, 말도 안 되는 소비를 한다. 요즘은 좋은 리뷰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잘 고르면 실패를 줄일 수 있는데도 그냥 산다. 그날의 책방에 그날의 책장을 열심히 보다가 끌리는 것을 산다. 돈을 쓰며 책을 사는데 살만한 책을 사야지 않을까 싶겠지만, 실은 '살만한' 책이란 없는 것 같다. 막상 읽어보니 기대한 재미는 아니라도, 내가 그 책을 어떠한 이유에서든 샀으니 그 책은 그 점에서 모종의 의미를 갖춘 책이 아닐까. 이 책을 여기서 왜 샀을까도 중요한 배움이 된다. 서가의 구성, 표지의 포인트, 제목의 기술, 기획의도의 의의. 최소 한 시간을 들여 고른 책은 분명 책의 셀링 포인트와 내 사고의 니즈가 결합된 소비다.
그런 점에서 '굳이' 서점에서 '정보 없이' 책을 사는 행위는 고효율의 행위다. 덕분에 스트레스 대신 정신 건강을 얻을 수 있고, 영감과 인사이트를 체화할 수 있으니까. 비효율은 어쩌면 고효율일지도 모른다고, 효율 인간은 비효율의 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