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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밑 Oct 27. 2024

느림의 특별함

빠른 완성 대신

  언젠가 '완성'이 모든 것의 기준이라는 게 불만스럽다고 쓴적이 있다. 완성 외에 수많은 미완성들은, 그 다양하고 신비스러운 스펙트럼에도 불구하고 '미'완성이라는 이름 하에 단 하나의 불완전으로 후려쳐진다고. 지금 생각해보니 완성과 미완성이 아니라 완전과 불완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뉘앙스는 같다고 주장해본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세상의 모든 일들은 결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결과 중심의 무결점 사회. '완성'의 결과를 보지 못한 행위들-미완성-은 전부 실패로 치부된다. 그것들은 결점이고, 결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실패자가 된다. 아마 학문적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나 문명과 정치 사회 구성물 같은 지루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원인을 파악하는 것도 좋겠지만, 결론적으로 '결과'만 놓고 볼 때 우린 세상이 인정하는 방식으로 완성하(되)지 못하면 도태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꼿꼿이 서기 위하여 우린 늘 빨라야 한다. 결과가 재단하는 세상은 언제나 빠르고, 그래서 무섭다. 조금 느린 사람들을 기다려 주거나, 살짝 삐끗해서 넘어진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일은 결코 흔하지 않다. 그런 행위는 어느 면에선 굉장히 특별해서, 이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들을 세상은 '무모하다'거나 '어리석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재밌는, 한편으론 모순적인, 진실은 온갖 부정의 수식어에 콧방귀를 뀌며 느림의 미학과 넘어짐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결과적'으로 '잘' 된다는 것이다. 빠른 완성의 논리에서도.



  이따금씩 나는 책을 덮는 방법으로 느림을 실천하곤 한다. 나는 조금 느리고 싶다. 그리고, 느려도 괜찮다고 말하는 그 무모하고 어리석은 인간이고 싶다.


  책을 읽지 않고 넘기기만 하는 나를 발견하고 느낀 그 오싹함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빠름과 완성은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서, 완독의 '완'이 목표가 되면 모든 것은 빨라야만 한다. 다독은 완독만큼이나 유혹적이며, 한정된 시간 내에 다독이라는 목표를 이루려면 역시 빨라야만 한다. 빠르게 많이 읽는 퀘스트를 달성하면 애서가라는 타이틀에 부스터를 달아주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 것만 같고, 해치우듯 책을 읽는다. 그럴 땐 늘 의식적으로 책을 덮는다.


  세상은 빠른 완성을 최고 가치로 친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좋음으로 여겨지는 가치를 따라가기 마련이다. '최고'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나는 그걸 알면서 혹은 알아서 더 기를 쓰고 느리게 되려 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다. 책을 읽지 않고 '보는' 식으로 몇 장의 페이지를 무심코 흘려보내는 시점의 나는 최고 가치를 숭배하는 평범한 인간일 뿐이지만, 느림을 사랑하는 순간 어리석고 무모해도 조금 특별한 사람이 된다. 평범함과 특별함 중에 하나를 고르는 일은 빨리빨리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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