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하되, 불리하되, 자연(自然)이 준 자기만을 완성해나가는 것은 정치가나 실업가(實業家)는 가져보지 못하는 예술가만의 영광인 것이다. —상허 이태준
사람은 태어남과 동시 ‘나’라는 거대한 돌을 부여받는다. 인생에 걸쳐 조각해나가는 것. 태준은 이를 예술가만의 영광이라 표했지만 나는 우리 사람이란 모두 그 자신에게 있어 정과 못을 쥔 조각가이자 예술가라 믿는다.
고교 3년, 나의 조각질은 타인의 눈에 들기 위함이었다. 사방의 친구도 같은 눈에 들기 위해 자신을 부단히 깎던 조각가였다. 때론 그가 깎은 윤곽의 상을 곁눈질하며 나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초조했다. 나만 멈춰있는 것 아닌가. 무서웠다.
20살, 이제는 그 공포가 싫어 의뢰인의 조각을 관두려니, 후—. 드러내는 조각을 하련다. 진정 조각가란 돌 안에 갇힌 작품을 해방한 미켈란젤로! 나에게 그자로 있고 싶다.
잠시 정과 못을 내려놓는다. 턱을 괴고 앉아 처음으로 ‘나’라는 돌덩이를 요모조모 관찰하는 성년의 새해다. 지용의 형용대로 정말 ‘아무러치도 않고 여쁠 것도 없는’ 돌덩어리지만 과연 이 안에는 자연이 준 어떤 형상이 감추어져 있을까 골몰할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