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이년생 꼰대 Feb 25. 2021

손편지

 으레 졸업식이 그렇듯, “내용은 이하 동문!”으로 범벅된 교단의 시상이 점점 루우우즈한 찰나 나는 J 양과 눈을 맞닥뜨린 것이다. J는 내게 무어라 말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검은 마스크를 뚫진 못했다. 내가 양팔을 뒤집어 올려 W상체로 의문을 내보이자 J는 여기로 잠시 와보라는 듯 여우꼬리처럼 손짓을 살랑살랑해 보였다. 나는 시상의 졸음을 틈타 뒷자리 J에게 스르륵— 은근히 다가갔다.

 인제야 J는 그 꼬리 같은 손을 교복 재킷 안주머니에 넣더니 뻣뻣한 무엇을 꺼내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J의 손바닥에 올려져 나에게 향해질 때서야 정체를 알았다.

 “J! 나한테 쓴 거야?”

 “웅!”

 “이거 정말 내 거야?”

 “웅!”     


 와! 제이! 이 얼마 만에 보는 손편지인가! 일순간 나는 벅 컴튼 중위가 되어 군복 차림으로 후송 열차에 올라타 있었다. 대학 입시라는 최전선에서 매일 밤 불안의 진격을 경계하며 보낸 1년···성탄절 직전 어찌 일이 풀려 지독히도 불안한 그곳으로부터 빠지라는 명령···그렇게 후송 중 열차 옆좌석에 앉은, 실로 전선에서 함께 싸운 전우가 나는 이만 여기서 내리니 남은 길 조심히 가게, 건넨 손편지의 기분! J의 손편지는 부지불식간 내게 그러한 환각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졸업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저녁쯤 피봉을 뜯을 땐 그 증이 훨 가라앉곤 이번엔 시원섭섭한 기분이 찾아왔다. 그간 수집한 손편지들은 마주 대함의 인사보단 함께한 시간의 작별 인사가 서린 것들이 다반사다. 그 탓에 지난의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본 적보다 그들이 남긴 편지를 열어 본 적이 최근임도 퍽 우습지만은 않은 일이다.

 ‘J와도 그렇게 되겠지.’

이 예감이 오늘은 유난히 일찍 다가와 손편지라는 것에 의미를 더해보게 한다.     


 첫째, 그것은 글이다. 거북스럽지만, 나를 주제로 한 글이다. 글의 한 성깔은 적잖은 시간을 재워야 몸매를 보인다는 것이다. 걸으면서, 씻으면서 혹은 먹으면서 머리로는 주제를 사색하는 시간부터, 작문이 막혀 펜을 물고 한숨 퍽퍽 쉬는 시간까지 필요하다. 그런 글쓴이의 시간이 동봉되어 전해짐에 우선 미안함과 뒤따른 고마움이 있다.

 둘째, 그것은 문장이다. 글이기에 문장임은 당연지사지만 따로 단을 지은 이유는 흔히 SNS상에서 문장의 탈을 쓴 ‘메시지’와 구별 짓기 위함이다. 메시지와 문장은 다르다. 메시지는 수신자에게 있어서도 발신자에게 있어서도—어디까지나 문장에 비하면—맥아리가 없다. 가령 ‘차녁 그동안 수고했쏘ㅠㅠ 졸업 ㅊㅊ!’ 같은 메시지도 편지에 올린다 치면 ‘찬혁아 그동안 수고했고 졸업을 축하해!’ 훨 단단하고 시간 들인 문장으로 변모하는 것이다. 장문의 메시지보다 두어줄 편지에 차라리 애장욕을 가지는 까닭이다.

 셋째, 그것은 항구하다. 지면만 누르스름해질 뿐 잉크의 또렷함과 당시의 번짐도 여실히 살아간다. 나의 이상야릇한 사고이지만 심적 나체라는 수필의 특성을 방패 삼아 말하자면, 쓰면서 묻었을 글쓴이의 지문과 살결의 터치도 항구하지 않을까 하는—제 것의 묻음은 차마 고려도 없는—노둔한 기대가 있다. 유물이니 보물이니 하는 고문서를 전시창 안에 내려놓을 때 장갑을 끼고 다루는 이유로 나는 선인의 지문과 살결의 터치가 훼손될 염려를 으뜸으로 뽑고 싶은 것도 그 탓이다.     

 최종 넷째, 순간도 항구하다. 손편지는 영사기다. 7해 먹은 편지를 딸각 켜 볼 때면 필름이 도르륵— 돌아감과 함께 내 이 흰 허공벽에는 ‘바야흐로 2014년’이라는 자막이 지나간다. 이윽고 지금은 20살일 여자가 6학년 소녀의 모습으로 편지를 건네고 그것을 받든 소년은 어리숙해 별 고맙다는 말도 건네지 못하는 교실씬이 상영된다. 유형물에서 무형의 추억까지 그리는 것이다.          


 J의 편지도 분명 당장은 상영할 수 없는 어떤 항구한 순간을 저장했음에 안심하며 다시 피봉에 넣고 책상 서랍을 연다. 모퉁이에는 7해, 4해, 3해, 2해, 1해 연차로 손편지들이 서 있다. 실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12월쯤 나는 고마웠던 전우들에게 편지를 써 볼까 생각했더라. 하지만 그것은 이튿날 아침 어리광스러운 아이의 변덕이 도지는 바람에 하루도 채 못가 말소된 구상에 그치고 말았다. 그 구상을 J는 실천해 졸업식 날 어리광 군에게도 편지를 건넨 것이다. 으앙! 고교 3년, 나는 끝까지 J를 이기지 못했다.

 J의 편지를 집는다. J처럼, 타인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데 있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머뭇말며 황소걸음처럼 우직히 추진하는 성년이 되어야겠음을 2021이 신축년임을 상기하며 다짐하고, J의 편지를 1해 먹은 것 앞에 예쁘게 세워놓으며 한 번 더 다짐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