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2024.05.05
우리 개들은 하루 두 끼 중 한 끼를 생식으로 먹는다. 생식을 하게 된 건 2016년 나의 시츄 국희가 아프면서부터다. 순전히 내 부주의로 국희의 심장병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밥을 주는 것뿐이었다. 성에 차지 않아 공부를 했다. 국희의 남은 시간이 조금이라도 길어질 수 있길 바랐다. 살아있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기분 좋은 일이 있길 바랐다. 생식은 그런 염원에서 시작했다. 생식으로 기운을 차린 개들 사례도 많았고, 희야의 생식에 대한 기호성도 굉장했기 때문이다. 국희는 방광문제로 오랫동안 맛없는 처방사료를 먹었는데, 살 날이 길지 않으니 더 이상 맛없는 처방사료 따윌 주고 싶지 않았다.
생식은 개와 늑대가 본질적으로 같은 동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럼 늑대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늑대는 육식동물이다. 적극적인 사냥으로 신선한 고기를 먹지만, 스캐빈저(사체를 먹는 생태계청소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는다. 늑대는 뼈를 같이 씹어먹는 습성이 있다. 동족과 경쟁적인 섭식을 하기 때문인데 미량의 영양소도 뼈에서 얻는다. 미끈한 액체를 만드는 늑대와 개의 항문낭은 뼈 때문에 딱딱해진 변을 부드럽게 배출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여기에 사소한 몇 가지를 보태자면 늑대를 비롯한 포식동물은 대체로 사냥감의 항문부터 시작해 내장을 먼저 먹는다. 지방이 많기 때문이다. 늑대과 동물이 지방을 사랑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늑대는 이렇게 내장을 먹는 과정에서 초식동물의 내장에 남아있던 섬유질 따위를 일부 섭취하게 된다. 따라서 소량의 (꽤 소화가 된) 식물도 섭취가능하다 볼 수 있다.
개는 늑대에게 없는 능력이 있는데, 탄수화물을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그래서 생식에 약간의 곡류를 줘도 괜찮다. 주의할 건 줘도 괜찮다는 거지 많이 줘도 된단 말은 아니다. 어쨌거나 늑대와 개는 본질적으로 육식동물이기 때문이다.
국희를 위해 시작한 생식은 국희가 떠난 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내가 느낀 장점이 꽤 여럿이라서다. 일단 기호성이 무지하게 좋다. 처음 생식을 접한 일부 개들은 경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몇 번 고기맛을 보기 시작하면 이게 얼마나 맛있는지 금방 깨닫는다. 또 후루룩 빨아먹고 끝나는 사료와 달리 생식은 씹고 뜯고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개들은 생식만큼이나 생식을 먹는 그 과정도 즐긴다. 뜯어먹기 어려운 뼈고기를 한 시간 넘게 뜯고 나온 개들의 만족스럽게 지친 표정을 본 적이 있는가? 흐뭇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두 번째는 어디까지나 개인적 경험이라 충분한 데이터로 증명할 수 없는 건데,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 국희야 아픈 아이였으니 확인할 수 없지만, 같이 기르던 캔디(말티즈)의 아토피가 생식 이후로 많이 좋아졌다. 극심한 가려움으로 앞발과 눈 주변의 털을 다 뽑았었는데, 꾸준히 생식을 하면서 그런 버릇이 거의 사라졌다. 지금 기르는 초코와 세라는 지금껏 식이와 관련되었다고 보이는 병을 앓은 적이 없다. 특히 개를 키우면서 꼭 겪었던 피부염, 중이염, 방광과 결석문제를 겪지 않았다. 증명할 수는 없지만 생식 덕을 본 게 아닌가 추측한다.
물론 생식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반대의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사료는 영양균형이 완벽한데, 생식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글쎄... 잘 만든 생식의 영양균형이 사료보다 못하다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설령 생식이 매끼마다 완벽한 영양구성이 아닐지라도 일정 기간 영양적 균형이 맞으면 괜찮다. 몸이 그 정도는 커버한다. 나는 일주일을 기준으로 그 안에서 적당한 비율로 고기와 뼈, 기타 식재료를 맞춰주고 있다. 이런 기준으로 10년 가까이 개들에게 생식을 시키고 있지만 영양적 문제가 발견된 적은 아직 없다.
나는 나름대로 생식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강권하고 싶지는 않다. 일단 품이 많이 든다. 때때로 내 밥보다 오래 걸리는 생식을 준비하면 너무 '강쥐중심의 삶 아냐?'라고 고민한 적도 있으니까. 내 반려동물의 섭식방법은 각자 보호자가 자기 상황에 맞게 결정하면 된다. 다만 생식에 대한 마음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 보길 바란다. 꽤 보람 있는 일이니까. 더불어 이 글을 읽고는 행여나 나의 반려멍냥에게 생식을 시키지 않는다고 죄책감 비슷한 걸 느끼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저 어디까지나 보호자의 선택일 뿐이며, 얼마나 사랑하는지와는 아무 상관없다. 사료를 주든 생식을 주든 당신의 멍냥을 당신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단언할 수 있다.
아래 동아리 단톡방에 공개한 초코세라의 생식레시피를 첨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