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아 더 즐거운 그린아크 아파트, 입주자 모집 중

Q선생님께 보내는 첫 번째 편지

by MINI

* 이 이야기는 100% 창작을 통해 만들어진 허구입니다.

지명, 인물명, 단체명이나 사건명들이 실존하거나 실제와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도 그것은 완전히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 격주(26. 02 01)로 연재될 예정입니다.



등장인물

Q선생님 : 40대 후반의 여성. 화자인 ‘경숙’에게 글쓰기를 가르쳐준 선생님. 지금은 남편과 미국에서 살고 있다.

경숙 : 50대 초반의 여성. 편지를 쓰는 주인공.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로 이사해 겪은 기묘한 일들을 Q선생님에게 쓰고 있다.

(똑순이) 소라 : 40대 후반의 여성. 경숙의 하우스메이트. 개를 좋아하며 경숙 때문에 간접적으로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초코·세라 : 경숙의 강아지. 경숙과 소라의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둘의 자식 같은 존재.

이무백 : 40대 후반의 남성. 경숙의 전 연인. 사채로 돈을 많이 번 부모 밑에서 자랐다. 다정하고 유약한 남자.

경숙엄마 : 70대 중반의 여성. 경숙과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엄마. 서로 많이 다른 듯,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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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아서 더 즐거운 아파트! 그린아크 초원 입주자 모집 중’>



Q선생님, 선생님한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자니 마음이 콩닥콩닥하네요. 저번 통화에서 아무렇지 않게 ‘그럼 이메일로 편지를 보내세요.’라고 했을 때 저는 엄청 충격 받았어요. ‘편지 쓴다.’는 걸 상상도 하지 못했거든요. 부끄럽지만 국민학교 어버이날, 국군의 날에 쓰라고 해서 쓴 거 말곤 단 한 번도 편지를 써본 적이 없어요. 오십 평생에 그럴 일이 없었다니 우습죠? 알아요. 저 우스운 여자인 거. 선생님도 그러셨잖아요. ‘경숙씨는 참 재밌는 분이라고.’ 아직도 그렇게 말하실 때 선생님의 우아하고 기분 좋은 미소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하긴 Q선생님은 글쓰기를 가르치는 분이니, 당연히 편지라는 것에 대해 알고 계셨겠죠. 너무 좋은 생각입니다. 갑갑했던 제 상황에 한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기분이었어요. ‘한줄기 빛’이란 말은 편지에 쓰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제가 진심으로 느껴서 하는 말이랍니다. 선생님의 편지 제안을 듣자마자, ‘아! Q선생님이 이 일을 알게 되신다면 마음이 조금 풀리겠다!’ 싶었어요.



어디서부터 얘기해야할까? 선생님이 10년 전 미국으로 떠나실 때 저도 연서동으로 이사했어요. 그 시기가 같아서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답니다. 선생님 송별회 때 제가 연서동으로 갈 거라고 하니 ‘나도 그 동네에서 살았는데 미로 같은 골목들이 참 정겹고 좋았다.’ 고 말씀하셨던 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저도 그 때 선생님 말을 듣고는 동네 골목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지금은 연서동을 떠났어요. 거기서 7년쯤 살았는데, 당시 같이 살았던 남자친구와 결국은 헤어지게 되었거든요. 들어서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남자친구는 선생님 글쓰기 수업을 (잠깐!) 같이 들었던 이무백씨에요. 무백씨는 저와 결혼하고 싶어 했지만, 집안의 반대가 어마어마했어요. 웃긴 건 우리 엄마도 반대한 거예요. 참 내 쥐뿔도 없이, 별로 예쁘지도 않고 나이도 많은 딸을 좋아해준 무백씨한테 절을 해도 모자랄 판에, 얼굴이 하얗고 비리비리해서 싫다니...

우리 엄마얘기를 하면 이야기가 산으로 갈 테니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선생님이 예전 수업 때 우리 엄마를 제 글 속 캐릭터에 녹여보라고 하셨죠? 언젠가 드라마대본을 쓰게 되면 꼭 도전해보겠습니다. 드라마대본 나오면 제일 먼저 보내드릴 테니 꼭 읽어봐 주세요!

무백씨와 헤어지게 되자 저는 연서동을 떠나고 싶었어요. 그 때 마침 제 똑순이 친구 소라도 집을 구하고 있었어요. 소라는 제가 연서동 부동산에서 일할 때 손님으로 만났는데 잘 맞아서 친구가 됐어요. 희한한 관계죠? 심지어 이 친구가 당시 고른 집은 제가 보여준 물건도 아닌데, 제가 성실하게 집을 보여준 게 고마워서 저녁을 사주겠다고 해서 같이 밥을 먹고 어찌어찌 친해졌어요.

소라는 법대를 졸업해 국내 굴지의 법무법인을 다니고 있는 아주 똑똑한 친구랍니다. 똑순이는 사실 저희 강아지를 노리고 있었어요. 저랑 친구가 된 것도 어쩜 제가 아니라 우리 강아지 초코, 세라 때문일지도 몰라요. 소라도 개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혼자 사는데다 하루 종일 회사에 있으니 불가능한 상황이죠. 그래서 집에 화분도 안들인 친구랍니다. 그런데 제가 무백씨와 헤어지기로 하고 집을 찾으려고 결심할 무렵, 소라도 이사할 계획이었어요. 저는 옳다구나 하고 소라를 꼬셨죠. 나랑 같이 살면 초코, 세라를 매일 볼 수 있다고요. 집안일도 내가 많이 할 거다, 하니 것도 혹 했나 봐요. 선생님도 아시겠지만 제가 요리를 곧잘 하잖아요. 그래서 같이 살기로 흔쾌히 합의를 봤답니다.

같이 살 사람은 구했는데 어디서 살지 정하는덴 시간이 좀 걸렸어요. 소라는 이제 다세대주택이나 코딱지만한 빌라는 진저리가 난다고 세대수가 좀 되는 공동주택을, 기왕이면 아파트를 원했어요. 지금 사는 집, 집주인과 이웃들한테 데였던 것 같아요. 저는 저대로 강아지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고 근처에서 산책하기 좋은 집을 원했고요. 그런데 서울에서 그런 집을 구하는 건 어려워요. 돈이 아주 많다면 가능하겠지만 저도 소라도 그렇진 않거든요.

제가 이사할 집을 구하는 것 때문에 골을 싸매고 있으니 무백씨가 자기 이름으로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얻어주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교통이 좀 불편한 데로 가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면서요. 그 말에 흔들렸지만, 헤어지기로 했는데 어떻게 그런 호의를 받겠어요? 거기다 무백씨 부모님은 일수를 놓는, 돈놀이로 큰 부를 쌓으신 분들이에요. 돈이 어디로 가서 어디로 오는 지 꿰고 있는 분들인데, 아들이 전세 얻은 걸 절대 모르고 넘어갈 분들이 아니에요. 아마 찾아내서 절 경찰서에 무단침입 같은 걸로 처넣을 거예요.

무백씨한테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다, 우리는 이제 안 볼 사이인데 그거에 맞게 처신하자고 했어요. 그 날 무백씨가 펑펑 울고, 저도 훌쩍훌쩍 했는데....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슬퍼도 다 받아들여지더라고요. 무백씨 부모님 입장도 이해가 되고.... 어쩌면 그를 계속 사랑하기에는 제가 너무 늙었나 봐요. 세상을 모르지 않을 나이니까요.



소라는 바빠서 집 알아보는 걸 저한테 다 맡겼어요. 부동산중개소에서 일도 했으니 절 믿은 거죠. 물론 저야 원광구 일대 시세는 바싹합니다. 그래서 더 심난했어요. 소라 2억, 저 1억으로 규모가 있는 빌라나 아파트, 혹은 우리 강아지들이 놀기 좋은 단독주택은 꿈만 같은 얘기니까요. 소라는 직장이 종로 쪽이라서 멀리 이사 갈 생각도 없었고요.

한 달 넘게 집을 보러 다녔는데 마땅한 집이 없었어요. 똑순이 소라는 웬만한 집들은 똑부러지게 거절하더라구요. 거절 이유가 납득이 가서 설득도 하다 말았어요. 주말 이틀 쉬는 친구 끌고나와 맘에 안 드는 집을 구경시키는 게 참 힘든 일이었어요. 소라는 괜찮다고 했지만요. 거기다 마침 아는 언니 지인이 강남에서 반찬가게를 크게 하는데, 주말 일손이 부족하다고 해서 거기 다니게 됐어요. 덕분에 이사 갈 집을 알아보는 건 소강상태가 되었죠. 돌이켜보면 무백씨랑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 미적댄 것도 있지 않나 싶네요.

반찬가게 일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어요. 명품을 온몸을 휘감고 와서 삼천원짜리 반찬가지고 양이 적네많네, 상태가 좋네안좋네 따지면서 흥정하는 아줌마들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요. 새벽같이 나갔다고 7시 넘어 마치는 게 좀 힘들었는데 주말이라고 일당을 많이 쳐줘서 꾹 참고 다녔어요. 남은 반찬 얻어오는 것도 좋았고요.

반찬가게 출근한 지 삼주 째 되던 날 일요일 아침, 출근하는 지하철역 스크린 도어에 있던 광고를 봤어요. 계속 붙어있던 건데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다가 그 날 마침 철거를 하고 있어 새삼 보게 된 거죠. 거기에 이렇게 써져있었어요.



[같이 살아서 더 즐거운 아파트! 그린아크 초원 입주자 모집 중]



저는 살면서 지하철 광고 철거하는 거 그 때 처음 봤어요. 온 신경이 집구하는데 가있어서 그랬는지, 철거일꾼이 대충 접어들고 가던 광고필름 속에 삐죽 나온 ‘아파트’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가는 길에 검색을 해봤죠. 분양광고가 아니더라구요. 정부에서 지원해서 임차료가 저렴한 민간임대아파트고 신축이었어요! 까다로운 입주조건도 없고, 경기도이긴 하지만 연서동에서 아주 가깝더라구요. 맘에 걸리는 건 일 년 전에 절찬리에 임대접수가 끝났다는 기사였어요. 보증금을 확인했더니 세상에! 저랑 똑순이가 가진 돈으로 대출 없이 갈 수 있겠더라구요. 똑순이한테 바로 그린아크 초원 광고와 기사를 전송하고 전화했어요. 소라는 ‘출퇴근 1시간미만 거리에 신축아파트라고? 당장 알아봐!’라고 소리쳤어요.

종일 아파트 생각을 했어요. 공원 같은 아파트 단지를 우리 초코세라랑 산책하고, 널찍한 거실에 나만의 온전한 방, 커다란 주방에 식재료와 조리도구를 늘어놓고 이런저런 음식을 한꺼번에 요리하는 모습.... 괜히 설레더라구요. 빈집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말이죠.


Q선생님이 알고 계시듯, 5개월 후에 저와 소라와 초코세라는 그린아크 초원 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어요. 그것도 열 몇 평의 작은 아파트가 아니라 84제곱미터, 방이 무려 4개(팬트리 룸 포함!)인 국평으로요!




2025년 8월

나의 영원한 글쓰기 선생님 Q에게 사랑을 담아 경숙 보냄




추신 : Q선생님이 이 편지를 첨삭지도하실 거 아닌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선생님께 보낸단 생각에 제가 몇 번을 고치고 또 고쳤는지 몰라요. 그래도 문장이 이 모양 이 꼴 밖에 안 돼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답니다. 보내기버튼을 클릭하기 전까지 얼마나 주저했는지 몰라요. 이런 주제에 작가를 꿈꾸다니.... 무모한 년! 호호호.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