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렵다는 처가살이 제가 해볼까 합니다!
그 여자. 그 남자의 이야기
2014년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날 경주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는 식사를 잘 하지
않고 긴장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무슨일 있냐고 묻자,
그는 주저주저하더니
"우리 이제 결혼하자!
결혼에 대해 생각을 해봤거든.
결혼은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당신을 만나면서
결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반지 끼워주고 꽃다발을 주면서
프러포즈해야 되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해.
1년 가까이 당신을 보아왔고,
당신도 나에 대해 충분한 시간
이었으니 우리 이젠 결혼해도
되지 않을까?
풍요로운 생활은 아니지만
우리 둘이라면 조금 더 나은
생활이 되지 않을까 해."
"나는 엄마를 떠나 살 수 없어.
나 떠나면 엄마 혼자 지내야 돼.
엄마는 이제껏 혼자 지내본 적도
없고, 나 또한 엄마랑 헤어져서
산다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
"어머니 때문에 망설여진다면
어머니와 함께 살자"
"엄마랑 대구로 오라고?
그건 간단한 문제 아니야.
엄만 50년 넘게 거기서 살았고,
답답해서 대구에서 못살아."
"내가 대구생활 정리해서
당신 집으로 들어갈게.
거기서 출, 퇴근해도 돼.
내가 어머니께도 잘할 테니"
"결혼이 쉬운 게 아닌 걸 알잖아!
일단 생각을 좀 해보자"
난 단 한 번도 그를 만나면서
결혼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는 분명 좋은 사람인걸 알지만
결혼으로 엮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이력이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결혼이 나의 로망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첫 번째 결혼이
아프고 힘든 삶이었기에
더 이상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그 또한 비혼주의 까지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해야 하나?
생각하며 살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만나왔다.
난 두렵다!
내게 시댁 생기는 것도
싱글맘으로서 시댁에 가면
왠지 주눅 들어야 하는 것도.
그리고
그 사람이 우리 집에서 장모님이랑
살게 된다면, 그 또한 시댁에
눈치 봐야 하는 것까지.
[그 당시 남자의 이야기 듣고,
남자의 입장에서 적었습니다.]
결혼하자는 나의 말에
생각해 보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며칠 동안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내가 먼저 연락해 볼까?
조바심도 났지만
조용히 그녀의 연락을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열흘이 지나서야 그녀에게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만나러 갔다.
차 안에서 조용히 이야기
하자고 했다.
단호하게 그녀는 나에게
"우리 이제 그만 헤어져"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충격이었다.
"나 없이 살 수 있어?
난 그럴 수 없는데"
그녀가 내손을 뿌리쳤다.
나는 힘으로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무엇을 걱정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집을 걱정하는 거라면
내가 알아서 처리해 놓을게.
그래도 당신에게 뭐라고
얘기한다면 내 뒤에 있어.
앞에서 내가 막아줄 테니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난 당신 인생을 살게
해주고 싶어. 누구의 딸도 아니고
누구의 엄마도 아닌
당신 이름을 찾아주고 싶어.
나를 믿고 따라왔으면 좋겠다"
그녀가 울고 있다.
온몸이 파르르 떨린다.
울음을 억지로 삼키며
쓰러질 듯 울고 있다.
그녀의 떨리는 몸을
으스러질 정도로 안아주었다.
그녀의 슬픔이
그녀의 아픔이
나에게 온몸으로 전달되어
나 또한 울고 있었다.
난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안하리라는, 다짐으로 그녀를
감싸고 있었는지 모른다.
30대에 장사를 시작했다.
20살 되기 시작하자마자
직장인으로 열심히 일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모은 돈으로 시작했다.
가게는 너무나 잘되었다.
하루매출이 100만 원
훌쩍 넘었다.
그때 한 여자를 만났다.
나보다 10살이나 어린 20대
초반의 어여쁜 아가씨였다.
너무나 사랑했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었다. 장사도 잘 되었고
그녀도 곁에 있어 핑크빛 미래만
있어 보였다.
유혹은 언제나 달콤하다.
돈을 더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호텔 나이트클럽 공동투자
하자는 말에, 솔깃하여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부모님 돈까지
쏟아부었다.
끊임없이 돈이 들어갔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사기였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 남은 건 빚이 몇 억이었다.
나이트클럽 사장될 거라는
부푼 마음에 장사는 뒷전이었고
당연히 가게매출이 없었다.
나는 나락으로 떨어졌고
울며 그녀를 떠나보냈다.
임신한 그녀를 유산시키고
떠나보내야 했다.
난 철저히 나쁜 놈이었다.
그녀도, 나도, 지키지 못한
나쁜 놈이었다!
모든 연락을 끊고 서울로 가서
레미콘 회사 취직하여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7년 후 나는 돈을 다 갚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도 연락을 끊고 살았었다.
엄마는 이 무심한 놈
욕을 하시며 울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안 계셨다.
아버지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난 천하의 나쁜 놈이었다.
사랑했던 여자를 떠나보내고
사랑도, 결혼도, 포기하고 살았다.
이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주위에 힘든 사람들 많이 보았다.
그녀보다 더 아픈 삶을
사는 사람들도 이야기 들었고
주변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이,
그녀의 아픔이
나는 너무나 안쓰러웠다.
착하다 못해 바보같이
여린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냈는지 마음이 아프고
신경 쓰였다. 그래서 난
이 여자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녀의 어머니께
정식으로 인사드리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