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이고 살지 마라!

엄마는 어떤 심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을까?

by 빛나는 윤별경


이혼을 한 그날

집으로 돌아와, 그의 뜻대로

하지 않았다.

시아버님께 나에게 일어났던

모든 이야기를 해드렸다.

이미 조금의 내용은 아시는 듯했다.

6.25전쟁참전으로 강을

잃으셔서 50년을 사셨고,

지병도 있어서

쓰러지실까 걱정하였지만

덤덤하게 들으시고는

'미안하다' 하셨다.

당신 손주와 떠날 거니깐

건강하시라고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친정에 며칠 있다가 오너라!

나에게 며느린 너 밖에없다.

하셨지만, 내가 다신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계셨으리라.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내 아들과 난 떠날게!

이 집에 있을 사람은 내가 아닌

너와 그 여자일 테니!"

그는 자기뜻대로 내가 하지 않

놀랐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한참 후

"--알겠어"

그렇게 난 친정으로 돌아왔다.




우리 형제는 1남 3녀이다.

나는 막내다.

오빠와는 13살. 큰언니와는 8살. 작은언니와는 6살 차이 난다.

군인공무원이셨던 아버진

해외로, 다른 지역으로

인사이동이 잦아, 형제들이

나이차이가 있는 것도

한 몫을 하였다.


난 오빠가 무서웠다.

모든 면이 뛰어던 오빠

나에게 오빤 내가 닮고싶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위트있고 장난치는걸 좋아한

오빠였지만, 공무원이 되고 난 뒤

직장인의 애환이었는지,

잘 웃지도 않았고, 점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행정공무원이었던 오빠는 29살에

약혼을 하였으나, 교통사고를 당해

1년넘게 병원생활을 해야 했다.

긴 세월에 약혼녀는 지쳤는지,

파혼을 하고 떠나가자 오빠는

그 이후로 결혼을 하지 않았다.


큰언닌 20살 되자마자

연애한 남자와 결혼을 했다.

속도위반이었다.

잘 살 줄 알았지만,

손찌검 하는 남편때문에

늘 두들겨 맞고, 친정에 와서

울면서 못 살겠다고 하여

엄마를 속상하게 했다.


그런 언니를 보며 아버진

그 집 귀신돼라! 호통을 치셨고,

엄만 언니를 달래어 전주에서

한참이나 더 가야 하는

어느 시. 덜컹거리는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데려다주시곤 했다.


어릴 때 본 그때의 기억들은

두들겨 맞은 언니보다

엄마의 눈물이 더 쓰러웠다.

그 당시 엄만 50대 중반.

70넘은 독하디 독한

안사돈 어른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아직 어려서 세상물정을

모르니 이해해 주이소!"

그러셨다고 했다.


두들겨 맞은 딸을 위해

큰소리치셔야 했지만

"딸 가진 죄인이 무신~"

그렇게 말씀하셨다.

언니가 30살 즈음.

그 잘난 엄마의 큰 사위

첫사랑 만나서 살아야겠다고,

큰언니에게 모진 말과 회유로

내쫓았다. 그렇게 큰언닌

이혼을 당하였다.


지금 큰언닌 작은 식당을 운영한다.

아들들이 결혼하여 손주들에게

용돈을 주며, 싱글생활을

30년 넘게 즐기고 있다.


작은언닌 22살에 소개받은

남자와 결혼을 하였으나,

심한 알콜중독자였고, 몇 년간

힘겹게 살았지만, 끝내 이혼을

하게 되었다. 10년 넘게 남자는

거들떠보지 않더니, 괜찮은 분

만나 혼하였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언니들의

힘든 결혼생과 그 끝을 보았고

부모님과 오빠의 한숨을

들었기에 나의 불행한 결혼과

이혼은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친정에 내려와서

"아버님이 내가 몸이 아픈걸

아시고, 며칠 쉬다 오래서 며칠

있다가 갈게" 말하였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며칠이라도 쉬고 싶었다.

엄마의 따뜻한 밥과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그리고 자고 싶었다.

편하게 먹지도 못했고,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었다.

며칠있다가 아들을 데리고 나갈

생각이었다. 새로 곳에서

새로 시작하고 싶었다.


나의 행동이 이상했던 걸까?

이튿날 오빠가 불렀다.

무슨 일 있는 거 맞제?

거짓말하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 하라고 하여 울면서

있었던 모든 일을

토해내듯 이야기하였다.


오빠는 한숨을 쉬더니, 한참 후

"이미 일어난 일을 우짜겠노?

우린 니가 잘 사는 줄 알았다.

어릴 때부터 혼자서 척척

잘했고 결이 바른 아이라서

걱정 안하고 지냈다.

전화로 항상 잘 지낸다고 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요즘은 연예인들도 자기 인생

찾는다고 이혼하는 시대다!

니가 연예인이 아니지만,

니 인생 다시 시작한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여긴 촌이라

사람들이 수군 댈 수 도 있다.


절대로 고개 숙이고 다니지 마라

니 잘못 아니다. 알았제?"


엄마는 옆에서 계속 우셨다.

"아이고. 내 새끼 고생했다.

사느라 고생 많았데이!걱정 마라.

착함 끝에는 좋은 일 있다.

여기 니가 살던 집에서 다시

시작하자. 우리 손주 잘 키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