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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 윤별경 Sep 07. 2023

집마다 꼴통은 있다.2

꼴통과 꼴통의 대결

우리집의 꼴통은 작은언니였다.

어릴때부터 키도 컸으며,

여자아이들이 하는 고무줄놀이는

하지않았고,남자애들이 하는

딱지치기나,구슬놀이,비석치기했다.

어느날은 딱지치기 재료로

오빠수학책 겉표지 만들어서 하다가

오빠한테 들켜서 혼나고,

엄마한테 흠씬두들겨 맞았다.

엿장수 지나가면 연탄불쏘시개는

기본으로 없어졌으며,아버지 군대에서

받은 훈장도 팔아서 엿바꿔먹었다.

아버지 훈장도 꽤 많았는데~~

이모가 우리집와서 동네할머니들과

10원짜리 화투치다가 돈을 잃으면

집에와서 온갖 신경질을 부렸다.

어느날은 작은언니가 듣다가

"이모가스나.짜증낼거면 너거

집에가라.우리집오지마라"

이랬다가 이모는 후라이팬들고

언니때릴려하다가 언니는 멀리

도망가고 있었다.

언니는 핸드볼선수여서

달리기를 엄청 잘했다.

작은언니는 매번 이모와 서로

으르렁 거리며 싸웠다.


하지만 이모가 뭐가틀어져서 밥을

안먹고, 문을 잠궈버리면

달래서 밥먹게하는 사람도

작은 언니였다.


외할아버 돌아가신날.

1980년 12월31일 이었다.

78세로 돌아가셨는데,

눈이 엄청왔었다.절대울지 않을 것

같은 이모는 엄청 울었다.

이모우는모습 처음 보았다.

발인전 마지막 날,

이모는 팝송틀어놓고,

와인마시며 할아버지 영정앞에서

대가족 모인 어른들 앞에서

춤을 추었다.


작은 외할아버지들,외할머니들

혼내셨지만 "아버지는 호상인데

마지막날 즐겨야지요."

오빠를 불러서 오빠랑 같이

춤을 추었다. 가족들도 웃으며

외할버지 마지막을 보내드렸다.

그리곤 이모의 행방을 아무도 몰랐다.


20년 훨씬지나고 나서야 이모는

 어느 요양원에 계신다고 했다.

이모랑 작은언닌 껴안고

엄청 울었다.이모는 자궁암 이라는

진단을 받고 모든걸 정리하고,

아무에게 이야기 하지않고

혼자 입원.수술하고 그리고

조용히 요양원 오셨단다.


모은 재산은 80년대 당시

2억넘는 돈을 암센터에 기증하고

자기가 요양원 있을 돈3천만원을

주고 계셨단다..

이모성격이 워낙 깔끔하여

가족들에게도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던것이다.

우리가 찾아간다고 해도

절대로 못오게 하시더니

몇번의 요구에 언니랑내가

갔던거였다.


이모는 엄마보다 먼저 5년전에

돌아가셨다.

이모는 자기 장례비용까지

요양원 관계자에게 남겨주고

가셨고,남은돈 이천만원은

외삼촌과 엄마의 바램으로

요양원에 기부하였다.


이모는 본인성격대로 깔끔하게

이 세상을 사셨으며, 마지막까지

잘 정리된 삶으로 마무리 하셨다.

이모가 있는 추모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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