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일상적인 조경 이야기(13)

영동 레인보우 힐링관광지(3)_ 단차를 넘어선, 회랑의 길

by 초록아이

지난 글에서는

와인터널과 복합문화마당의 조성 과정을 돌아보며

그 안에 담긴 작은 이야기들을 전해 드렸습니다.


사실 영동 레인보우 힐링관광지에는

과일나라 테마공원, 힐링센터, 휴양빌리지, 골프장 등

정말 다양한 관광시설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레인보우 힐링관광지 종합계획도 (2025년)

물론 이런 시설들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많은 분들에게 알리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제가 이 글에서 전하고 싶은 것은

일반적인 블로그나 홈페이지에서처럼

완성된 시설을 멋지게 홍보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이 공간들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긴 시간과 과정,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고민과 흔적

조금 더 생생하게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직접적인 관광시설은 아니지만,

설계 과정에서의 고민을 담아 마련된 특별한 공간,

그 과정을 함께 들여다보려 합니다.


복합문화마당이 자리한 지금의 중심 지구는,

사실 예전에는 제법 큰 야산이었습니다.

항공촬영 사진 좌측(2010년), 우측(2023년)


새로운 관광시설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땅을 평탄하게 만드는 공사는 불가피했습니다.


그렇다고 산을 송두리째 없애는 방식은

환경에도, 경관에도, 그리고 경제성에도

결코 어울리지 않는 선택이었지요.


수차례 이어진 논의 끝에,

우리는 산의 원형을 완전히 지우지 않고

세 개의 단으로 나누는 방안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각 단의 높이가 약 5M에 이르다 보니

이 단차를 극복할 방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부지 확보 측면에서는 옹벽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었지만,

관광지라는 장소의 성격을 고려할 때

그 방식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첫 번째 단은 폭이 좁아,

옹벽을 설치한 뒤 인공 암벽으로 마감하면서

벽천과 분수로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인공폭포로 조성한 첫 번째 단 (이미지 출처 : 영동군)


마지막 단은,

광장을 관람하는 야외 스탠드로 조성하여

계단식 구조로 경사면을 극복하였습니다.

계단식 구조로 설치한 야외 스탠드 (이미지 출처 : 영동군)

가장 큰 고민은 가운데 놓인 두 번째 단 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관광시설 부지가 다소 줄더라도

경관적인 측면과 사업비를 고려해

비탈면으로 길게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경사면 조성으로 제안한 스케치 (2015년)


하지만 대규모 경사면의 처리 방식과,

가용 부지 축소 문제를 두고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논의만 이어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직원이 무심히 꺼낸 아이디어 하나가

뜻밖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바로,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공원에 있는

돌기둥 회랑을 응용해 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구엘공원의 세탁부의 회랑 (Portico de la Lavandera)


공사비와 여러 현실의 벽을 떠올리며

이 아이디어가 실현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저 스쳐 지나간 발상으로만 남겨 두었는데,

뜻밖에도 발주처가 그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었습니다.


그 순간,

막혀 있던 논의 속에 작은 길이 열리며

안도와 기대가 함께 스며들었습니다.

회랑으로 제안한 단면도와 스케치 이미지 (2015년)

하지만 그 기쁨도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아이디어는 참신하고 매력적이었지만,

막상 현실로 옮기는 일은 또 다른 과제였습니다.


가우디가 구엘공원 남측에 만든 곡선형 회랑은,

공사 과정에서 나온 돌을 현장에서 재활용해

기둥과 아치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자연의 형태를 닮아가도록 완성한 작품입니다.

가우디의 돌기둥회랑 내·외부 전경 (이미지 출처 : 사례조사 보고서)


어떻게 보면,

건축의 거장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빚어낸 공간을

우리는 단번에 재현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수많은 전문가들과 오랜 논의를 거쳤지만

결국 가우디 회랑이 지닌 본질은 담아내지는 못하고

기본적인 외형만 유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기둥과 아치를 비롯한 모든 형태는

콘크리트 구조물로 기초를 다지고 세운 뒤,

표면을 인공암으로 덮어 마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아쉬움이 남는 설계였고,

또 시공 과정에서 여러 민원과 제반여건이 겹치며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되게 되었습니다.

돌기둥 회랑 현장사진(2025년)


당초, 조망 공간으로 설계된 시설지는 사라지고,

비워 두었어야 할 회랑의 내부마저 창틀로 닫히면서

끝내 긴 미련과 아쉬움이 남게 되었습니다.


다만, 단순한 옹벽이나 경사면으로만 남지 않고,

그 자리에 조경의 세심한 손길이 더해지며

조금은 이색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

제겐 작은 위안으로 남습니다.


어쩌면 그 위안이야말로,

아쉬움 속에서도 우리가 조경이라는 일을

계속 이어가야 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복합문화마당 아래, 돌기둥 회랑 전경 (이미지 출처 : 영동군)

오늘 같은 날,

아이유가 이렇게 묻는다면요.


"광장 아래에 있는 저 돌기둥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저 돌기둥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에요.
삭막하고 거친 옹벽을 대신해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 준 회랑이지요.
그늘진 돌기둥 아래를 거닐며
이 공간을 함께 만든 이들을
잠시라도 떠올려 주신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같습니다.

작년 겨울, 가족과 함께 떠난 스페인 여행.

가우디의 구엘공원을 다시 찾아가

돌기둥 회랑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이곳의 인공 회랑 사진을

아이들에게 건네자,

순간 가벼운 웃음이 피어났습니다.


그 미소를 바라보며

저 역시 아무 말 없이 따라 웃었습니다.


언젠가 아빠가

다시 꺼낸 한 장의 사진 앞에서는,


지난날의 아쉬운 미소가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세상 가득 울려 퍼지는

환한 웃음을 지을 그날을


오늘도

마음 깊이 기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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