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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만 Aug 10. 2023

일기 어쩌면 편지

딸내미의 브런치 맛보기

여행 왔으니까 쓰는 거야?

고개만 돌리면 파도 위에 산란하는 윤슬을 볼 수 있다. 여름휴가다운 풍경이다.


스물이 넘어서 지내던 곳을 떠나 대학이 있는 지역에 지내기로 하고 처음에 느낀 건 당황이라고 말해 줄까, 실망이었다.

잘 닦인 지방 도시는 어디로 가도 돌로 매끈하게 깎였을 뿐이다. 산속 집에 묻혀 지내다시피 하면서 도시가 좋겠다고 생각했어도 보고 나니 인문학적 감수성이 이는 삭막함이 있었다. 스스로 자연 속 작가요 선비의 삶을 표방하시던 아빠의 물이 모르는 새 들었는가 싶은 부분이다.


지금은 수국이 피는 동네 공원이며 카페를 다니며 익숙해진 곳이지만 돌아와 여름휴가를 오면 어쩔 수 없이 마음은 편하다. 굳이 즐겁지 않은 일과를 벗어나 사치스럽게 시간을 쓴다고 편한 게 아니라 자란 땅 자란 이들의 품에서 양수 속의 태아처럼 웅크렸기 때문이다. 과제를 하다가 컴퓨터 앞에 웅크리고 앉아 게임 속에 조성해 둔 물가를 멍하니 보던 기억이 난다. 짧고 희미한 향수였는지도 모르겠다.


해가 높이 걸렸다가 지는 걸음을 보면서 작은 노트북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지금 여기, 소금물 냄새가 옅게 나는 진짜 바다 앞.  아빠가 글을 올린다는 플랫폼 아빠의 계정에 글 한 꼭지를 방명록 대신 남기는 중이다.


여름 방학은 좋은 시간이지. 힘든 하루는 일 년처럼 길고 즐거운 시간은 손에 쥔 모래처럼 빠르게 가지만, 해변에서 밀짚모자를 껴안고 지내는 하루는 시간도 느긋하게 흘러 넉넉하게 즐겁다. 바닷가 도시에서 한평생을 살고 물새처럼 귀향해 오는 이유다.


*이 글은 이번 여름휴가 때 봉숭아라는 글을 쓰는 내 브런치계정에 딸이 끼적여 놓은 글을 대신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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