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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만 Jul 15. 2023

길에게 길을 묻다.


주택 단지의 맨 꼭대기에 첨탑처럼 서 있는 집을 내려와 조금만 동쪽으로 발을 옮기면 당진에서는 가장 유명한 아미산의 동쪽 숲길로 올라가는 가파른 언덕을 마주한다.

험난한 구간이나 접근을 거부하는 위험함이 없이 전체적으로는 완만한 산임에도 불구하고 아미산은 대면부터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폐부의 구석구석 숨겨 둔 비밀까지 다 토해낼 듯 거친 숨을 쏟아내며 100여 미터를 오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컷 오프를 통과한 선수에게 주어진 시원한 필드처럼 산은 아늑한 입구를 열어 나를 맞이한다.     

이곳에 이사를 온 지도 어느새 일곱 달이 지나고 있다. 이른 봄에 시작된 숲길 산책은 여름이 지나는 동안 절정을 이루었지만, 내가 퇴근하기가 바쁘게 산책을 가자고 요란한 고함을 지르며 졸라대던 다니엘(우리 집 비글 강아지)을 잃어버린 늦은 여름 이후로는 마치 건전지의 수명이 다 해가는 인형의 움직임처럼 산길을 오르는 의지는 끽끽거렸고 드문드문 해 졌다.   

이 숲길을 산책할 때면 가이드를 하듯 늘 앞장서서 쫄랑쫄랑 걸어가던 강아지가 없어지니 언덕길을 오르는 수고가 더욱 힘겹게만 느껴졌고 동행이 없는 혼자만의 산책이 쓸쓸하기도 해서 한동안 거의 산책을 하지 않다가 가을이 깊어지면서 짧아지는 햇살 속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더듬어 보려 다시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산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걷는 숲길은 꽃 소문으로 요란했던 봄과, 나뭇잎과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 풀벌레소리, 산새소리로 가득했던 여름과, 생애를 갈무리하며 잎을 떨어뜨리는 소리로 요란했던 가을을 지나며 이제는 조용히 안으로 침잠하는 계절을 숙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계절의 섭리를 따라 윤회하던 생애의 소리들이 사라지고 이젠 간간이 산새소리만 들려오는 적요한 이 길을 걸으면 늘 ‘길에게 길을 묻다’라는 문장이 화두처럼 앞장서서 길을 걷는다.

라디오의 저녁시간 음악 프로그램 중에 이 제목의 코너가 있다. 목소리를 한껏 가라앉힌 중년의 여자 DJ가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나른하게 인생의 단면이 그려진 시를 한 편씩 소개한다.

때로는 굽어지고 때로는 아득히 열리는 이 길을 걸으며 여태 내가 걸어온 굽어지고 거칠었던 길과 또한 걸어가야 할 보장되지 않은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때로 고민한다. 그리고 때때로 이 길에게, 예견할 수 없는 앞으로의 길을 묻고 싶어 진다. 길은 그저 길 일 뿐이고 스스로 길을 내어 줄 리 만무하지만 불투명한 인생의 단면과도 같은 이 길에 서면 늘 내 삶의 단층이 조명되는 듯하여 이 길에게 길을 물어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잃어버린 가족 다니엘

안정적이던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둔 후로 내 인생길은 적잖이 덜컹덜컹거렸다.

탄탄대로는 아니더라도 안정이 보장된 길을 벗어나 내 힘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길은 평탄하지 못해 때때로 입이 바싹 말라가도록 푸석푸석 먼지가 날기도 했다. 원인으로 치자면 내 어리석음이 제일이겠으나 거기에는 늘 내 걸음을 지치게 만드는 이들이 있었다. 때로 분노하고 로 체념하며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 온 날이 많았다. 그나마 가파른 절망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신앙이었다.

내 삶이 온전히 그분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믿음이 마음을 평안하게 했으나 때로 날카롭게 이성의 틈새를 파고드는 현실적인  염려들은 집요하게 내 몸을 공격해 나는 어느새 탈모와 당뇨 환자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길에 서 있다.

미지를 여행하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듯 꿈같은 일들이 시작되고 갈무리되는 일들로  빛나는 활주로 같은 길이 있을 것이며, 또 어떤 이의 길은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무작정 막막함을 인내해야 하는 길도 있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정복되지 않는 설산에 루트를 만드는 것처럼 까마득한 빙벽에 매달려 위태롭게 만들어가야 하는 길도 있을 것이다. 이 지구 위에는  반짝이는 활주로와 안개 자욱한 길과 죽음 같은 빙벽이 항상 공존하듯 우리는 모두 그 어느 곳인 가의 길에 서 있다.

타인의 길은 늘 발 끝에 차이는 돌부리가 없는 평탄한 길 같아서 때때로 부러워하고 그 길 위의 삶을 동경하기도 하지만 길의 진실은 그 길에 선 사람만이 정확하게 안다. 그래서 인생길만큼 다양하고 개별성이 강한 것도 없을 것이다.     

사진출처 인터넷

요즘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중세시대에 많은 순례자들이 각자의 집을 떠나 산티아고로 향했던 신앙적 순례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의 의도는 꼭 종교적인 전통성을 따르지는 않는다.

AD 9세기경 스페인의 산티아고에서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되자 신앙심이 깊었던 중세 사람들은 각자의 처소에서 야고보의 유해가 안치된 성지인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험난한 순례길을 나서는 것이 일생의 큰 소망이 되었다. 그때 형성된 순례길 중 9개의 길이 대표적인 순례길로 남아 오늘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이들이 그 길을 걷는다.

얼마 전에는 국내 유명한 배우들이 나와 ‘스페인 숙소’라는 이름으로 순례자들이 길을 걷다가 하룻밤 쉬어가는 ‘알베르게’를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짧게는 120km에서 길게는 1,000km를 걸어야 하는 험난하고 기나긴 길이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지금은 종교와 상관없이 그 길 위에서의 고단함을 동경하는 이가 많아졌다. 그러나 그 길을 걷는 일이 중세의 종교적 의미에서 지극히 개인적인 의미로 바뀌었다고는 해도 아무도 그 길의 여정을 여행이라 부르지는 않는다.  

모르기는 해도 누구라도 자연이나 감상하려고 그 멀고 험난한 길을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종교적 염원과 소망이 없을지라도 그 길에서 찾고 싶은 것이 진정한 나 일수도 있고 깊고 깊은 인생의 물음에 대한 간절한 해답일 수도 있다면 그 길 위에 선 모두를 순례자라 명명하는 것이 결코 억지는 아닐 것이다.  

    

집 앞으로 이어진 이 산길을 걸으면 늘 이 길은 나만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된다.

그 길 위에는 삶에 대한 무수한 성찰과 간절한 바람들이 스며들어 있어 늘 혼자 걷는 길은 기도의 길이었고 진정으로 순례의 길이었다.

언젠가 이 길 위의 순례자는 더 이상 길에게 길을 물을 것 없이 평안한 순례를 마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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