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순간은 생각보다 자주, 실제적으로 느껴진다. 크리스천들은 늘 믿음의 선택을 하며, 성령충만한가? 누군가 이런 질문을 한다면 내 대답은 No이다. 그렇기에 신앙생활이란 발버둥이다.
예수님을 알기 전의 생각과 모습대로 살아가려는 인간의 본성, 죄된 모습이 자꾸 올라온다. 하지만, 단언컨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된 모습 가운데서도 나에게 말씀하시며 옳을 길로 이끄신다.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계심을 느낄 때도 있으나 작은 일상의 사건에서 내 성품이 변화했음을 느낄 때 나는 특히 감사를 느낀다. 최근 있었던 한 가지 일화를 나누고 싶다.
보통 나는 남편의 날카로운 대답에 비슷한 타격의 답변으로 응수한다던가 '나는 네 대답으로 인해 빈정이 상하다 못해 곰팡이까지 폈다'는 아우라를 내뿜곤 한다. 이러한 반응은 곧 말다툼으로 이어지고 과거의 일들까지 들추게 만든다. 부부싸움은 이렇게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일상대화 중에도 서로의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하는 일은 매우 잦았다. 지금이야 연식이 좀 된 부부다 보니 신경을 건드리는 말을 듣더라도 '쟈는 말투가 좀 그럴 뿐이지 애는 착혀'의 마인드가 장착되어 '굳이' 싸우진 않지만, 신혼 때는 서로 불을 뿜어냈으면서 '네가 더 큰 불씨를 던졌다'는 시시비비를 가리는데 혈안이었다.
우리는 사소하지만 다툼의 치명적 발화점이 되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었다. 셀프 마인드컨트롤이나 상대에게 감정이 상했음을 부드럽게 일러주기 등등 우리 부부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안 써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이 방법에는 치명적 문제가 존재했다. 이미 상대의 말투에 감정이 상한 상태가 되면 '마인드컨트롤이고 나발이고 개나 줘!'의 마인드가 오토로 장착된다는 것. 그렇게 되면 부드럽게 일러주기는커녕 내 입에서도 총알이나 미사일이 발사되곤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예수님을 알기 전의 양상이었다. 사실 신앙생활 초기엔 이런 부분도 기도해야 되는 영역인지 알지 못했기에 구할 생각조차 없었다.
이 역시 기도해야 하는 부분임을 깨닫고 기도로 구하던 어느 날, 남편은 여느 때와 같이 내게 빈정 곰팡이를 유발하는 말투를 시전 했다. 내 반응은 어땠을까? 이상하게도 화가 나지 않고, 부드럽게 일러주게 되었다! 심지어 내가 그랬다는 걸 내가 말을 뱉고 난 30초 뒤 깨달았다. 할렐루야! 하나님, 이제 제가인지하기도 전에 제 모습을 바꿔주시나요?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과하진 않았지만 사과의 마음이 충분히 느껴지는 반응이 돌아왔다. 이 남자도 내 달라진 변화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 확실하다!
이 작지만 확실한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내가 한 일은 단지 기도하고 기다린 것뿐이었다. 셀프 마인드컨트롤을 위해 참을 인자를 100번 새기거나 '애는 착혀'의 '애'자도 떠올리지 않았다. 이런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하나님은 내 기도를 모두 듣고 계시며,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음을 체감하게 된다.
하나님의 때와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는 때로는 답답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은 항상 정확한 때에 확실한 방법으로 일하신다! 그동안 많은 일들을 통해 알고 느꼈음에도 대부분 불신앙으로 반응하는 내게도 하나님은 반드시 일하신다.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은 큰 게 아니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일은 오늘 내가 먹을 영의 양식을 먹고, 잘 씹어 묵상하는 것이다. 잘 자고 잘 먹는 것이 어린아이의 유일한 의무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