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무 살이던 해의 성년의 날, 그날은 민들레영토의 넓은 세미나룸이 가득 찬 날이었다. 짝이 없던 나와 우리 과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업을 마친 후, 대학과 가까운 민들레영토에서 만났다. 다행히(?) 우리의 손에는 대학에서 성년의 날이라며 선심 쓰듯 나눠 준 장미꽃 한 송이씩이 들려 있었고, 우리들은 솔로였다.
대학생활의 5월은 다양한 주제가 오갈 수 있는 시기였다. MT와 여러 신학기 학과 모임으로 어색함이 어느 정도 풀어지기도 했고, 누가 어디 출신이며 남자 친구가 있는지 없는지 정도의 개인사는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다양한 주제를 제치고 그날 우리의 대화주제는 단연, 연애와 대학생활이었다. 과에서 어떤 선배가 제일 멋있고, 밥을 잘 사주는가, A와 B는 cc가 되었다는 등등의 이야기였다. 애석하지만 당연하게도 이야기의 주인공이던 cc들은 그 자리에 없었다.
그날 모임을 파하며 우리는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년, 같은 날, 이 모임에 서로의 부재를 바랐을 것이다. 평소엔 달달하기만 했던 민토차가 그날따라 유독 씁쓸하게 느껴졌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민들레영토에 얽힌 또 다른 추억은 첫 소개팅이다. 스무 살의 나에게 소개팅이란 드디어 나도 어른이 되어 자유롭고 합법적인 연애를 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인증받는 수료식 비슷한 것이었다. 당시 민토에는 떡볶이와 필라프 등 식사 메뉴도 팔았는데, 첫 소개팅이라 떨려인지 음식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여자가 남자 앞에서 음식을 깨작거리게 되는 이유를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이성 앞에서 밥을 먹는다는 게 이렇게도 불편할 일인가.
나는 마음에 들었던 그 남자가 나를 동생으로 보아 결국 사랑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는 새드엔딩의 스토리이지만, 그 아픔을 지우기 위해(어쩌면 그 메뉴가 맛있어서) 친구들과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민토를 찾곤 했다. 소개팅 날 먹지 못하고 남긴 메뉴들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신나게 먹어댔다. 당시 내 최애메뉴였던 치즈 얹은 떡국떡볶이는 아직도 가끔 구미를 확 당기게 한다. 다시는 먹을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더 생각이 난다.
그때 민토에 함께 갔던 친구들과는 SNS상에서는 친구지만, 막상 연락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세월의 흐름만큼 마음의 벽도 높아져서다. 다행히, 특별히 대학시절 베스트였던 친구들은 1년에 한두 번은 보는데, 만날 때마다 옛날 얘기로 꽃을 피운다.
어렸을 땐 어른들이 왜 했던 얘기를 또 하면서 똑같은 대목에서 웃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이제는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며 아이처럼 웃는 우리를 발견한다. 추억의 힘은 참 강렬하다. 당시에는 추억이 될 거라 생각지도 못했던 기억들도 이토록 오래 남는 걸 보면 말이다.
옛날 기억을 떠올릴 때면 지금의 삶이 참 새삼스럽다. 10년, 20년 전만 해도 지금 이런 삶을 살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이를 키우고, 어른들 사이에서 어른인 척하며 살면서도 가끔은 내가 낯설면서도 재밌다.
어른놀이가 아직도 재미있게 느껴지는 걸 보면 확실히 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세상 이치 다 아는 노련한 어른인 척 다른 어른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다 보면, 민토차를 마시던 스무 살의 내가 역할극을 하는 양 느껴져 현실이 비현실로 다가온다.
오늘따라 민토차와 떡국으로 만든 민토표 떡볶이가 심각하게 당긴다. 어느 착한 민토 알바생이 올린 민토 떡볶이 레시피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