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내가 살던 집 뒤켠에는 원두막이 있었다. 주말마다 이모네가 놀러 와서 푹 고아진 닭백숙을 함께 먹었던 기억은 백숙을 먹을 때마다 떠오르는 소중한 추억이다. 백숙을 먹은 뒤 피날레는 항상 죽이 장식했는데, 죽을 리필 하려다 생각보다 뜨거웠던 그릇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뜨거운 무언가를 만질 때면 마음이 절로 졸여진다.
어린 시절에는 이모네가 주말마다 놀러 왔기 때문에 순진했던 초등학생 눈에는 그게 국룰처럼 보였다. 주말에는 당연히 친척이나 친구가 놀러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기에 나라에서 정한 법쯤은 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진짜 사촌 외에도 이웃사촌들과 담장 없이 지내며 먼 친척보다 가까이 지냈던 기억들은 뜬금없는 상황에서 문득문득 떠오른다. 특히나, 친했던 언니의 땀냄새와 그 언니가 맛있게 먹던 비비빅 아이스크림이 그렇다. 그 언니의 땀냄새와 똑같은 땀냄새를 맡게 되면 이제는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생각나지 않는 그 언니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비비빅 아이스크림을 보면 팥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그 언니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도 몇 번 사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어린 시절의 기억은 참 강렬하다. 동네의 길고양이를 '나비야-'라고 다정하게 불러 주시던 동네 할아버지의 모습과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빵집의 풍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창문 너머로 구경하던 진열대의 자르지 않은 식빵은 지금도 내 식욕을 자극한다. 그 빵집 딸내미가 세일러문이었나 웨딩피치를 참 좋아했는데, 함께 주제곡을 부르며 제법 진지하게 인형놀이를 하던 추억의 단편도 떠오른다.
어린 시절 다양한 이웃과 일상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내게 큰 의미를 남긴 것 같다. 지금은 민폐로 여겨지는 일들이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친구 집에 가서 며칠 자고 오기도 하고, 완도에 있는 친구 할머니네 집에 가서 피서를 하기도 했다. 늦게 까지 바다에서 놀고 돌아오던 길에 들었던 개구리들의 합창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원래도 갈수록 각박해지는 추세였지만, 코로나 이후 사회가 더욱 딱딱해졌다. 내 아이를 남의 집에 보내는 것도, 남의 아이를 내 집에 들이는 것도 이제는 너무 부담스러운 일이 된 거다. 민폐 끼치지 않으려고 혹은 피해를 보거나 책임질 일을 피하려다 보니 생긴 문화일 것이다. 파워 E인 나부터도 남의 집에 방문하거나, 남을 내 집에 들이는 일이 마냥 반겨지지 않는 걸 보면.
갈수록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의 덕을 볼 때도 있고, 탓을 할 때도 있다. 장점이라면 남을 신경 쓰지 않고 나만 잘하면 만사 OK라는 것, 단점이라면 남도 딱히 내게 관심도 도움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개인주의 사회의 단점과 아쉬움이 더 크게 와닿는다.
아날로그 시절부터 AI시대에 이르기까지의 과도기를 겪어서일까? 자꾸 아날로그나 레트로에 정이 가고, AI나 개인주의에 대해서는 뱃속 깊은데서부터 반감이 올라온다. 나는 아직도 챗GPT에게 고민상담을 해본 적 없다. '형체도 감정도 없는 한낱 AI 따위가 뭘 알아?'라는 흥선대원군도 울고 갈 내 가치관은 마지막 자존심이다.
키오스크 앞에서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어르신의 모습이 생경하지 않은 시대다. 사람이 하던 일을 점차 AI가 대체하고, 사람은 물건 취급받는다. 이웃 간의 정을 나누던 옛날, 요즘 젠지 세대들은 어떻더라 같은 라떼 얘기를 꺼내면 chill 하지 못한 구닥다리가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시대의 막차에라도 올라타려면 얼마나 더 쿨해져야 하는 걸까?
아무리 손풍기와 넥쿨러를 두르고 다녀도 이 시대의 쿨함과 점점 멀어져 가는 나는, 가끔 이웃들에게 옛날식 마음을 전하는데 상대가 옛날 방식으로 반응해 줄 때면 참 반갑다. 마치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모스부호가 통한 느낌이랄까.
점점 빠르고, 차갑게 변해가는 이 시대에는 어쩌면 따뜻한 닭죽 한 그릇이 필요할는지 모른다. 손을 델까 하는 두려움을 비워내면 그 뜨거운 그릇 안에는 반드시, 눅진한 국물 잔뜩 머금은 맛있는 닭죽이 담겨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