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인생의 전성기에는 언제나 깐쇼새우가 있다

by 루시엘다

중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성적이 항상 중간쯤이었던 나는 중간고사에서 평균 90점대에 육박한 점수를 받았다. (사실 정확히 점수가 기억은 안 나지만, 평소 받았던 점수보다 확실히 높았던 걸 보면 저 점수 언저리쯤 되었을 것이다) 우리 아빠는 너무 신이 나셨는지, 회사 점심시간에 엄마와 나를 불러 회사 근처 고급 중식집으로 데려가셨다.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간소 중새우와 조우한다. 메뉴판에 잘못 적혀 있던 건지, 내 기억이 잘못됐던 건지 우리는 그 간소 중새우를 먹으며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떠오를 정도로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를 먹었다. 아무래도 음식이 맛도 있었겠지만, 오래간만에 받은 높은 점수와 아빠가 좋아하던 모습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을 거다.


이후 우리 가족에게 깐쇼새우는 행복의 정점을 대체하는 말이 되었다. 좋은 일이 생기면, 간소 중새우 사줄까? 하시는 아빠의 말이 귓전에 생생하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가끔 중식을 먹으러 가서 깐쇼새우를 먹거나 메뉴판에서 이름을 보면 자연스레 행복했던 그날이 떠오른다.


지병으로 고생하셨던 아빠를 떠올리면 인생의 끝자락까지 투병생활을 하셨던 모습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하지만, 늘 긍정적이고 밝으셨던 분이었기에 즐거웠던 기억도 많다. 특히 내게 간소 중새우를 사주시던 시기는 우리 아빠의 전성기였다. 탄탄한 대기업에 다니시며 가장의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계셨고, 아이들은 사춘기 없이 잘 자라고 있었으며 부부 사이도 썩 나쁘진 않았다.


아빠의 전성기를 떠올리면, 내 인생의 전성기에 대해서도 자연스레 고찰해 보게 된다. 내 인생의 전성기는 이미 지나간 걸까, 아니면 지나고 있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한 때 많이 해봤지만 정답은 뻔하게도 지금이 전성기라는 거다.


20대 때는 책임과 의무라는 단어와 다소 거리가 있었지만, 직장 생활에 치이고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를 되뇌느라 다소 막막했다. 아직 책임질 무언가는 없지만, 장차 뭔가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에 눈먼 장님이 길 찾아가듯 했지만,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청춘이란 아무런 간판이 없어도 빛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그때는 이런저런 간판을 달아보며 어떤 간판이 나랑 맞는지 혹은 나를 더 있어 보이게 만들어 줄 것인지 고민했다.


30대 초반에는 아이를 낳고 기르며 내가 책임져야 할 생명을 돌보느라 책임, 의무라는 단어조차 머릿속에 떠올릴 틈 없이 그냥 살아냈다. 사람이 아침에 눈을 뜨면 의무나 책임에 의해 일어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물을 한 잔 마시는 것처럼, 그렇게 당연하게 아이를 길렀다.


그러다 덜컥, 인생에 브레이크가 걸리는 순간이 왔다. 뭐지? 내 삶은 이렇게 시시하게 끝나는 건가? 결국 애엄마가 되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나? 지나온 내 인생의 열매들이 한순간에 무용지물이 된 기분이었다. 나 이렇게 살다가 나이 들어 죽는 건가? 내 애가 잘 되길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면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인생을 자식에게 투영하며 살았다. 내 자식이 잘 되면 그게 행복이었고,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의 젊은 부모들, 가깝게는 내 지인들을 보면 인생을 자식에게 거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자식이 아닌 내 인생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 훨씬 많아진 거다.


그럼, 여기서 생각해 볼 게 한 가지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일까? 언제였지?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지나갔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또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문다. 나는 왜 인생의 전성기를 기다리는가. 이미 지나갔을지도 모를 전성기를 왜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인 마냥 고대하는가.


나는 그래서 이제 전성기에 대한 고찰은 관두고, 행복한 순간마다 깐쇼새우를 먹으려 한다. 더 이상 깐쇼새우를 사줄 아빠는 안 계시지만, 이제 나는 깐쇼새우쯤 내돈내산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내 행복 정도는 스스로 챙길 수 있는 어른이 된 거다.


나도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어른이 되었다는 게 어색할 때도 있고, 무서울 때도 있지만 그냥 이제는 깐쇼새우를 자주 사 먹으며 어색함과 두려움쯤은 털어낼 수 있다. 이제 자력으로 깐쇼새우쯤 거뜬히 사 먹는 내 모습을 아빠가 아시면 정말 뿌듯하실 거다.


오늘도 의미 없는 행동일지도 모르는 글쓰기를 하며, 꿈을 꾼다. 다행히 깐쇼새우 속 새우가 되는 꿈은 아니고, 내가 가고자 하는 길, 그 끝에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꿈을 꾼다. 10년 후, 20년 후 어떤 내가 될지 나는 모르지만 나는 확신한다. 나는 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고, 목적하는 그곳에 다다르면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을 반드시 맛볼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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