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경험은 누군가에겐 그저 재수가 없어서 혹은 누구(주로 이 대상은 남이다) 때문에 겪게 된 불운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고난의 사건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다뤄가신다.
광야학교 생활은 녹록지 않다. 우리의 학창 시절만 떠올려봐도 즐거운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교차한다. 생각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기억도 있지만, 아예 삭제하고 휴지통까지 비우고픈 기억도 있다. 광야학교 생활도 마찬가지다. 감당하기 힘들 때가 있지만, 손쉬운 자퇴는 안될 일이다.
광야학교는 고난이라는 고난도 전공 필수과목을 통해 끊임없이 과제를 던져준다. 어떤 때는 무려 '이런 걸(이런 사람, 이런 환경)' 감당해 보라고 던져 준 교수님에게 따지고 싶은 때도 있다.
"왜 이런 고난을 저에게 주시나요? 이게 정말 최선인가요?"
광야학교에서의 생활은 이것이 최선임을 깨닫고 그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거센 바람에 잠시 흔들릴 수 있어도 뿌리 뽑히지 않는 든든한 나무로 성장해 가는 과정.
공부란 원래 괴롭고 힘들다. 학생이 자기 의무인 공부를 놔버리면 자신도, 주변 사람도 괴로워진다. 힘들어서 던져버린 공부 때문에 더 큰 시련의 부메랑을 마주하게 된다. 누군가 그랬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은 없다고. 전속력으로 도망칠 땐 잠시 가뿐할 수 있지만, 안전지대라 생각한 곳에서 가뿐 숨을 고르다 보면 발밑에서 우글거리는 독사들과 독버섯들을 발견하게 되는 거다.
반대로, '원래 힘든' 공부를 오롯이 감당해 내기로 마음먹으면 배움과 인내에서 오는 보람을 느낀다. 과정이 힘들수록 오는 기쁨은 커진다. 슬픔이 기쁨으로, 고난이 상급으로 치환된다.
참 다행인 것은 하나님은 우리를 독학하게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성령님이라는 개인과외 선생님을 붙여주셔서 일대일 맞춤학습을 시키신다. 수업을 미루거나 땡땡이치고 싶은 날도 있다(사실 많다). 하지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일타강사 저리 가라인 성령님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머지않아 깊은 깨달음을 얻게 된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슬프게도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에 은혜의 순간과 감사의 기억들을 수시로 잊는다. 중간고사가 끝나면 곧 기말고사가 찾아오기에 무장하여 대비해야 하지만, 중간고사의 영광에 취해 기말고사를 잊어버리곤 한다. 그래놓곤 또, '하나님, 또 왜 이러세요. 우리 좋았잖아요.' 한다.
우리의 이런 꼴을 7번씩 70번까지도, 아니 그 이상 참고 참아주시는 주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은혜의 자리에 앉히신다. 독서실이든 스터디카페든 우리를 끌어다 앉히시는 거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돌쟁이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부모라도 되어주신다. 우리는 자주 '주님, 저는 틀렸어요. 먼저 가세요.'를 외치지만, 우리를 일으키시고, 상처 난 자리에 메디폼의 만 배 효과쯤 되는 방수밴드를 (물 샐 틈 없이 아주 꼼꼼히) 붙여주신다. 다음엔 넘어져도 방긋 웃으며 금방 일어나기를 바라시며. 그렇기에 하나님은 늘 우리에게 좋으신 분이다.
광야학교 재입학과 조기졸업의 선택지는 나에게 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알면서도 우리는 자주 내 감정과 마음이 주장하는 선택지를 고른다. 아주 쉬워 보이는 그 선택지는 액상과당 못지않은 달달함을 내뿜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현대인들은 알고 있다. 액상과당의 허상과 위험을. 그럼에도 후일에 닥칠 고난을 못 본 체하며 독약과도 같은 그것을 일단 삼키고 본다.
이 글 필자인 나도, 당장은 멀고 힘들게 느껴지는 그 좁은 길이 조기졸업의 지름길임을 안다. 그럼에도 갈림길에 서게 되면 또다시 같은 고민을 시작한다. 믿음의 한 걸음 떼기가 1톤짜리 모래주머니 단 것처럼 힘들기에, 오늘도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이번 기말고사는 제발 망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