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으른들의 고오급 간식, 목포 쫀드기

by 루시엘다

목포에 살아본 적도 없고, 목포에 딱 한 번 가본 게 전부인 나에게 목포 쫀드기는 밍숭맹숭 담백하지만, 은은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놀면 뭐하니에서 뜬금없이 옛 간식을 부활시킨답시고 목포 쫀드기를 소개했을 때,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저게 뭔지 도통 모르겠지만, 반드시 먹어야겠어!

이후 목포 쫀드기를 꼭 먹고야 말겠다는 내 목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던 중 아주 운명의 데스티니처럼 남편이 목포로 출장을 가게 되었고, 목포 쫀드기를 사 왔다. 그것도 통 크게 5만 원어치나! 이름하야 목포밥통 쫀데기! 그냥 쫀드기도 아니고 무려 밥통과 쫀데기의 조합이다!

렌지에 살짝 돌려 먹어보니, 밍숭맹숭하고 달지도 짜지도 맵지도 않은 것이 쫀득쫀득하니 자꾸 입에 들어간다. 자그마한 덩치 하나에 5백 원이라는 근엄한 가격을 자랑하는 쫀드기지만, 그 맛은 '가끔 사 먹을만하네'에서 '오늘부터 너를 내 인생의 동반자로 임명한다!'였다. 첫 입은 다소 고무 같았지만, 자잘한 결대로 찢어서 취미생활을 하듯 음미하며 잘근잘근 씹어먹는 맛이 일품이었다.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살짝 데워 먹어도 맛있는 목포 쫀드기는 그렇게 내 인생에 진도 0.1 수준의 작은 파장을 일으켰다. 흡연자가 식후땡 담배를 태우듯 나는 입이 심심할 때 혹은 식후땡으로 목포 쫀드기를 씹어댔다. 순전히 내 뇌피셜이지만 칼로리도 낮을 것 같고, 달지도 않은 이 간식은 으른에게 최적화된 간식이다!

서른이 넘은 이후로는 달달하거나 자극적인 간식을 멀리하게 된다. 이성에 힘을 꽉 주고 일부러 멀어지려고 하는 것도 있지만,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어 갈수록 왠지 달다구리 간식들은 영 구미가 당기질 않는다. 역시 건강을 생각해서겠지?

근데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철이 드는 것? 아니면 단 음식을 덜 먹게 되는 것? 단 음식이야 개인의 기호에 따라 차이가 있을 테니 차치하고, 철이 든다는 것에 대해 고찰하게 된다.

내 짧은 식견으로 '철든다는 것'은 기분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머리에 떠오른 대로 말하고,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 행동했다. 그렇게 철드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아가던 20대의 어느 날, 다소 쇼킹했던 문구를 발견하게 된다.

행복할 때 약속하지 말고, 화날 때 답변하지 말고, 슬플 때 결심하지 말라

그리고 깨닫는다. 맞아. 어른이 된다는 것, 묵직한 사람이 된다는 건 바로 저런 거야! 행복할 때는 어떤 결정이든 긍정적으로 다가오고, 쉽게 느껴진다. 행복이라는 감정에 취해 현실 감각이 다소 마비되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이 바람같이 지나간 후 뒷감당을 해야 할 미래의 나는 전혀 고려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이젠 중요한 결정을 하려면 반드시 하루 아니 반나절이라도 고민한다.

반대로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대답을 하게 되면, 의도치 않게 내 뜻이 곡해되어 전달된다. 사실 내 마음은 그 정도가 아닌데 상대방의 감정, 가치관에 블렌딩 되어 새로운 메시지로 탄생한다. 그 오해를 풀기란, 이미 엉킨 실을 힘으로 당겨서 풀려는 것과 같다. 힘을 다 빼고 나면 그 실은 가위로 난도질해 버리고 싶은 걸레짝이 돼버린다.

때로 시간은 우리에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나처럼 성격이 급한 사람에겐 독처럼 느껴질 때가 많지만, 그 독 같았던 것이 결국 입엔 쓰지만 몸에 좋은 약이 되어 주기도 한다. 처음엔 아무 맛없는 고무줄 같지만 천천히 씹다 보면 단맛도 느껴지는 쫀드기처럼 말이다.

냉동실을 열어보니, 한켠에 목포 쫀드기를 위한 공간이 러브하우스마냥 마련돼 있다. 꾸준한 냉털의 효과로 비로소 냉장고 정리가 된 모양이다. 지금 당장 목포 쫀드기를 시키고 싶지만, 폭신한 쿠셔닝을 자랑하는 배와 팔뚝을 보며 입맛만 다셔본다. 바로 구매를 갈기지 말고 시간을 가지며 참아보는 것도 어른의 덕목이겠거니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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