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일기 003. 상처엔 후시딘 말고 예수님

by 루시엘다

세상을 살다 보면 누구나 상처를 받게 된다. 일부러 누군가에게 생채기 내려는 마음이 없더라도 서로의 서투름으로 인해 혹은 자신의 상처로 인해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을 살기란 아마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시가 한 때 인기를 끌고, 지금도 가끔 회자되는 걸 보면 인간의 삶에서 상처는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한가보다.

사람마다 가진 상처의 크기는 다르다. 물론 누구나 자기 상처가 제일 크고 아프게 느껴지겠지만, 그 상처 근처만 가도 아파서 눈물부터 줄줄 흘리게 되는 상처를 가진 사람도, '이쯤이야'하며 인생의 작은 한 단면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크리스천인 나에게도 당연히 어린 시절부터 받아온 크고 작은 상처들이 있다. 나름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하는 나에게도 역시나 피할 수 없이 상처로 남은 기억들이 있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이 상처를 끄집어내야 하는 상황들이 오면 그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내 경우는 그 상처가 너무 아파서가 아니고, 내게 상처를 준 가해자 아닌 가해자들의 입장이 이해되기도 하고 상처받을만한 행동을 했던 내 모습도 어느 정도는 반성이 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나도 남들한테 그 정도 상처는 주고 살지 않았을까? 이쯤은 쿨하게 퉁쳐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 상황과 환경 혹은 가해자를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 대 씨게 맞아 아프기만 하던 과거의 나로 돌아가 나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은 왜 그리도 힘든 일일까? 병원에 가는 게 두려워 병을 키우고 마는 사람들처럼 덜 아파서 정신을 못 차린 걸까? 아니면 혼자 힘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세상적 방법과 즐거움은 일시적인 마취제 역할은 할 수 있다. 좋은 사람들과 술 한잔 하며, 혹은 좋은 곳으로 여행을 가면 잠시는 그 상처와 아픔이 잊힌다. 아주 잠시 멀어질 수는 있는 거다. 일상으로 돌아오면 그 상처는 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우리를 찾아온다.

혹시... 나 까먹은 거 아니지?

진드기, 옴, 러브버그보다 더 독한 이 상처는 도저히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 떼려야 떼어지지가 않는다. 오히려 어떻게 해결해야 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상처에 대해 묵상하며 상처와의 좋지 않은 추억을 쌓아간다.

과거의 상처 꺼내기는 아직도 너무 어렵지만, New!를 띄우며 업데이트되고 있는 신규 상처가 생기면 나는 아직 채 식지도 않은 따끈따끈한 상처 그대로를 주님께로 그대로 들고 간다. 그리곤 하소연한다.

주님, 이거 보세요. 저 여기가 이렇게 아파요. 주님이 고쳐주세요.

맡겨놓은 것 찾는 양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나의 유일한 치유자 되시고, 약국의 상비약이 아닌 오직 나를 위한 완벽한 처방약을 내려주실 이이심을 100퍼센트 확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치유해 주실 것을 믿고 말씀 앞에 서서 영적 감각을 활짝 열어놓기만 하면 주님께서는 아주 탁월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래서일까? 상처받은 일이 있는 시즌에는 주일 설교나 QT 말씀이 더욱 와닿는다. 마치 일주일째 사막을 헤매던 이가 드디어 맑은 물을 찾아 벌컥벌컥 마시듯 말씀을 그야말로 맛있게 먹게 된다.

그 과정을 통해 내 상처와 아픔은 기쁨과 소망으로 치환된다. 그리고는 내 상처와 낙심의 경험을 통해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이웃들을 돌아보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에게 아픔과 상처는 이렇게 유익이 있다.


솔직히 상처와 아픔을 반길 수는 없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임을 알기에 피투성이가 된 무릎에 다시 한번 힘주어 일어나게 된다.

(갑자기 상처전도사가 된 것 같지만) 낙심과 고난의 유익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건을 통해 내 믿음이 얼마나 연약한지 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 부족함을 직면하게 되기에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갈급하게 해진다.

가난한 심령, 개 취급 당할지라도 주인의 상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고자 하는 낮고 겸손한 마음이 되면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그 얼굴을 보이신다.

그리곤, 오매불망 탕자를 기다리던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리의 냄새나는 거적때기를 벗기시고, 깨끗한 새 옷으로 갈아입혀 주신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신앙의 성숙을 맞게 되고, 굳센 믿음이 세워진다.

때로는 신앙생활이 고시공부보다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내 의지와 노력, 내 판단으로 하고자 할 때 그렇다. 오늘도 이 글을 쓰며 다시 한번 다짐한다. 혼자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말고, 잔뜩 들어간 힘을 빼고 보혈의 십자가를 바라보자. 그러다 보면 어느 날,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지 못할 사람도 사랑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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