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일기 004. 눈물 없이 치른 아빠의 장례

by 루시엘다

우리 아빠는 젊어서부터 당뇨병을 앓으셨다. 내가 고등학생쯤 됐을 때 신장투석을 시작하셨고, 점차 시력도 안 좋아지시고, 발가락 괴사로 종아리까지 절단도 하시며 갖은 고생을 하셨다.

결국 간암이 뼈암으로 전이되어 시한부 판정을 받으셨는데 그때는 내가 새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고 한참 육아로 바쁘던 때였다.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은 그날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은 대통령 선거일이었다.

오빠에게 전화가 왔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아보았더니, 대뜸 아빠가 시한부 판정을 받아 9개월 밖에 살 수 없단다. 너무 갑작스럽고 경황이 없어 일단 전화를 끊고 아무도 모르게 화장실로 갔다.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나니 그제야 시한부 통보가 현실로 다가왔다.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고 '왜 우리 아빠한테 이런 일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런 상황을 접하면 '왜 하필 나야?'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당시엔 신앙생활을 하지 않던 때였기 때문에 그저 절망스러웠다. 모태신앙으로 살다 10년 간 자의적으로 교회를 졸업했던 내 마음의 상태는 '이제 슬슬 아이들을 위해 교회에 가볼까?' 하던 때였다. 물론 엄마가 계속 나를 위해 교회에 가볼 것은 권하고 기독교 신앙서적을 보내주며 여러 방법으로 권면했지만 쉽게 마음이 먹어지지 않았다.

20년이 훌쩍 넘는 지난 시절의 신앙생활에서 온 어쭙잖은 경험으로 나는 '교회의 생리'에 대해 다 알고 있다는 교만과 교회 공동체로 다시 들어간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여러 핑계로 미루고 미루던 신앙생활의 시작이 가시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빠의 시한부 판정으로 내 평온하던 마음의 강가에는 작지 않은 파장이 일었다. 이후,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 아빠가 나에게 예수 믿으라며 권면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 아빠로 말씀드리자면, 무려 곰이 사람을 찢듯 성경책을 찢던 대단한 분이셨다. 아주 먼 옛날 엄마가 오빠와 나를 데리고 교회에 가던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아빠는 여러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우리의 교회 출석을 막았다.

물론 나중에는 교회에 등록하셔서 성경 암송 대회에도 높은 성적으로 입상하시고 안수집사 타이틀까지 얻으셨다. 하지만, 아빠에게 신앙생활이란 일요일마다 하는 루틴 혹은 취미생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전도나 권면 같은 건 남일이셨다. 그랬던 아빠가 이젠 바뀌셨다. 먼저 됐다고 착각했던 자에게 나중 된 자가 신앙생활을 권면한 것이다.

여러 상황들 때문에 쉽지 않았으나, 시한부 인생을 앞둔 아빠를 위해 만나기 위해 매주 토요일 먼 길에 올랐다. 마침 시기적으로 주변 지인의 권유로 집 근처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지만, 회심은 없던 선데이 크리스천이었다.

토요일마다 아빠를 만나면 아빠에게 애정표현을 하고 자식들을 얼마나 훌륭하게 키우셨으며, 믿음을 잃은 자녀들에게 다시 복음을 전하는 아빠의 상이 크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덜컥, 하나님을 만나버렸다.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듣다가 '나도 저 사람처럼 평안을 얻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그동안 하나님이 내 아버지가 아니라 계부쯤으로 여겼다는 걸 깨닫게 됐다.

나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입양아였다. 하나님이 살아계실 순 있겠지만, 그분은 나의 하나님은 아니며 잘 나가는 저 사람 혹은 힘든 고난에 빠진 저 사람의 하나님이란 생각. 그랬던 나에게 그날, 그 시간에 하나님께서 내 맘에 노크를 하셨다.

너도 내 진짜 딸이야.

사람이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인다. 지나가는 구름이 나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살랑살랑 나뭇잎들이 나에게 춤추며 손을 흔든다. 이런 일은 그저 남 일이었는데 드디어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온 거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나에게도 죽음을 앞둔 아빠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어려운 문제였다. 아빠의 장례를 상상만 해도 눈물이 앞을 가렸으며, 남편에게 아빠 소식을 전할 때도 거의 눈물 반, 목소리 반이었다. 우선 나는 하나님께 간구했다.

하나님, 저희 아빠가 구원의 확신을 갖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아빠 천국으로 돌아가실 때, 힘들지 않게 잠들 듯이 편안하게 가시게 해 주세요.

아빠는 투병 생활 막바지에 호스피스 병동에 계셨는데, 고통으로 힘들어하시다가도 찬양해 주시는 분들의 찬양을 들으면 얼굴 표정이 아주 편안해지셨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가신 지 일주일이 채 안 되어 엄마에게 전화가 왔고, 다급한 목소리로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하셨다. 아무리 빨리 가도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내가 가는 중에 아빠가 돌아가실 것을 예상하고 장례를 치를 준비를 한 뒤 출발했다.

대략 30분 뒤, 집 근처 전철역에 막 도착했을 때 오빠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벨이 울릴 때부터 직감했다. '아, 아빠가 돌아가셨구나' 역시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고, 나는 침착하게 '알았어. 빨리 갈게'라고 답했다. 장례를 치른 뒤 올케언니에게 들은 후일담인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해서 내가 정신이 나간 줄 알았단다.

전철을 타고 가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제 마음이 평안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 가고 아빠의 시신을 보면 제 마음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붙잡아주세요.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아빠의 영정사진을 보는데, 눈물이 나는 게 아니라 아빠가 천국에 가셨다는 확인으로 마음에 평안이 가득했다.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던 아빠의 장례식에 나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내가 독하고 못된 딸이라서가 아니고, 이 땅에서 여러 질환으로 고생하시던 아빠가 이제 좋은 곳으로 가셨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아이를 좋은 대학으로 입학시켜 자랑스럽고 뿌듯한 엄마의 마음처럼 '우리 아빠 천국 가셨어요!'라는 플래카드라도 만들어 걸고 싶은 마음이었다.

공교롭게도 몇 달 전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사촌 언니가 조문을 왔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눈물이 안 날 수 있어. 그런데 끝나고 나면 실감 날 거야'라고 했지만, 나에게 끝끝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른 지 한참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ing이다.

아빠의 죽음은 나에게 귀한 간증이 되었다. 불신자인 남편도 신앙을 갖기 전에는 아빠의 '아'자만 나와도 눈물 흘리던 내가 바뀐 모습에 본인이 나서 간증 아닌 간증을 하기도 했다. 이 사람이 전엔 이렇지 않았다고. 하나님 덕분이 아니라 아마 체력 단련하듯 마음 단련을 단단히 했나 보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부인할 수 없는 이 간증의 경험은 아직도 내 신앙이 흔들리거나 넘어졌을 때, 다시 한번 나를 일으켜 세워준다.

그래, 하나님이 그때 그렇게 일하셨지.

사실 틀린 말이다. 그때만 일하셨던 게 아니고 지금도 하나님은 열일 중이시다. 내가 알게 모르게 여러 영역에서 내 삶을 이끌어가시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이스라엘의 역사책 속에만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다. 말씀으로 살아계시며, 때마다 시마다 내게 필요한 말씀으로 나를 '입양아'가 아닌 '친딸'로서 먹이시고 입히신다.

아빠의 유언은 아주 투박하고 어눌했지만, 내겐 아주 명확한 메시지였다. '이것들아, 예수 잘 믿어' 아빠는 나에게 겨자씨만 한 복음의 씨앗을 뿌리고,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다 하신 후 내 기도대로 잠들듯 평안하게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실 때 한쪽 다리가 없는 상태로 돌아가셨는데, 장례 당시 엄마와 나눈 대화가 있다. '너희 아빠, 지금쯤 천국에서 멀쩡한 두 다리로 신난다고 뛰어다니실 거다' 가끔 그 대화를 떠올리면 마음 한편에 따스한 햇살이 비친다.

아마 우리 아빠는 뛰는 정도가 아니라 신나서 날아다니고 계실 거다. 그리 머지않은 언젠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재회할 날을 기다리시며.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이 땅에서 천국의 그림자와 같은 삶을 그려간다.

[요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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