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서럽다. 해를 거듭할수록 근력량이 떨어지고 그에 따라 체력도 떨어진다.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는 게 피부로 느껴진다. 어른들이 내일 비가 오겠다며 관절을 주무르던 모습이 괜한 엄살이 아니었다는 게 피부로 와닿는 요즘이다.
오늘은 아무도 궁금하지 않겠지만, 오로지 나를 위한 기록으로 내 질병 연대기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가장 먼저 소개할 나의 질병은 입술 포진이다. 20대 중반쯤 발병한 이 질병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이 그냥 입술에 포진이 계속 올라왔다.
헤르페스도 아닌 것이, 대상포진도 아닌 것이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지는 시기가 되면 간질간질 입술을 간지럽힌다. 긁거나 떼어내면 물집이 터져 나와 기분 나쁜 막을 형성한다.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 거지만, 범인은 립밤에 들어간 왁스였다.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내 입술에 맞는 제품을 찾고자 여러 가지 립밤을 섭렵해 봤지만 결론은 '나는 립밤을 쓰면 안 되는구나'였다. 대체재로 비판텐을 바르고 있는데 비타민 성분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성분도 마음에 들고, 무엇보다 이 제품은 보습이 좋다. 가장 중요한 포진이 올라오지 않는다는 점도 특장점이다.
이 포진이 입술에만 났으면 좋으련만 한 때 직업적 이유로 오래 걸어야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발바닥에 한포진이 생겨났다. 이 질병도 20대 중후반쯤 시작되었는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미약하게나마 한포진을 앓고 있는 걸 보면, 정말 지독한 병이다.
한포진은 그래도 유명한 질병이기 때문에 마늘대를 삶은 물에 발을 담그면 좋다더라, 보습제를 잘 바르면 좋다더라 하는 여러 치유방법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막상 실천하기엔 어려운 방법이라는 거다. 마늘대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그 물을 정성스레 끓여서 직접 담그고 있어야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습제를 잘 바르라는 것도, 내가 덜 아파서 그랬었는지 발을 씻은 후 매번 보습제를 바른다는 게 간단하지만 쉽게 실천이 되지 않았다. 발에 로션을 바르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한다는 점이 고난도였다.
한포진은 많이 걷는 날이나 밀가루를 많이 먹을 때 유독 심하게 올라왔다. 밀가루는 특정한 때뿐만 아니라 늘 유독 많이 먹고 있기 때문에 한포진 마를 날 없이 거의 매일 한포진이 심했다.
아이를 낳고 나면 체질이 바뀌어 한포진이 낫는다는 말도 있었지만, 나에겐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았다. 한포진의 가려움을 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너무 너무 너무 가려운 부분을 긁을 때의 쾌감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한포진의 가장 좋은 치료법은 바로 긁지 않는 것이다. 긁지 않는 방법은 가려움이 시작될랑 말랑 간질간질할 때 상처부위에 손을 대지 않는 것이다. 손을 대면 거기서부터는 핸들이 고장 난 8톤 트럭으로 보면 된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프링글스 급으로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초반의 그 가려움만 잘 넘기면 그다음은 쉽다. 초반의 가려움은 모기에 물린 정도인데 그 순간만 넘기면 긁지 않고 넘어갈 수 있다. 자기 전에 발에 보습제를 옅게 발라주는 것도 좋다. 물론 (쉽지 않은 방법이지만) 밀가루를 끊으면 더욱 좋다.
다음 질병은 비염이다. 나의 경우는 한랭 알러지성 비염이 있는데, 원래 코 속이 비뚤어져 있어서 비염이 있는데 알러지성 비염 증상까지 합쳐진 케이스다. 날씨가 갑자기 훅 하고 추워지는 때 옷을 얇게 입고 있다면 치료 시기를 놓쳐 만성이 된 축농증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찾아온다.
가장 심했던 건 올해 1월이었는데 독감까지 겹쳐 더 심했다. 24시간 내내 코가 막힌 상태였고, 코 속에 숨 쉴 구멍이 1mm 정도였다. 밤에는 잠도 잘 수 없었다. 코가 막혀 입을 열면 입이 건조해지고, 입을 닫으면 숨을 못 쉬는 환장의 콜라보였다.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어서 끔찍했다.
당시에는 독감인지 몰랐었기 때문에 나와 비슷한 심각한 증세의 비염인들의 후기를 찾아보며 절망의 바다를 헤매었다. 지금은 다행히 살짝 추워지는 날씨일 때 옷을 단단히 입어주면 비염과 축농증 증상이 확 줄어든다. 뚫린 코로 숨을 쉬고, 잠을 자고, 음식의 맛도 느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다음은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다. 임신 때 갑상선에 이상이 발견되었고 당시 주치의가 임신 기간이 끝나면 다시 회복될 거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출산의 여파로 두둑한 뱃살, 팔뚝살만 얻은 게 아니라 갑상선 기능 저하증까지 얻게 된 거다.
발병 초기에는 누구나 그렇듯 다른 환자들이 겪는 증상들을 찾아보며 절망에 빠졌다. 난 이제 마른 인간으로 살아갈 수 없는 몸뚱이가 되어버렸구나. 갑상선 지능 저하증의 증세는 쉽게 피곤하고, 추위를 많이 타고, 살이 찌는 거였다.
다행히 쉽게 피로하고 살이 찌진 않았다. 추위는 원래 많이 탔기 때문에 겉옷만 잘 챙겨서 다닌다면 특별히 불편한 점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인이 갑상선 저하증에 좋다며 준 아로마 오일을 사용한 뒤로 내 호르몬에 교란이 오며 씬지로이드의 약효가 듣지 않았다.
피검사 결과가 이상하게 나오자 의사는 함부로 이런 약물을 쓰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제야 왜 내가 요 몇 주간 피곤했으며 운동을 하고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찌는지에 대해 알게 됐다. 오히려 평소보다 덜 먹고 많이 움직이는데도 다음 날 몸무게를 재보면 300-400그램 씩이 훅 늘어 있었다.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원인을 알게 되고 아로마 오일을 끊고 나니 점차 몸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러나 바톤터치를 하듯 다음 질병이 왔다. 가장 최근에 겪은 질병인 역류성 식도염이다.
몇 달 전부터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잘 때 신물도 아닌 무언가가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럴 때면 악몽을 꾸다 깬 사람처럼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다. 그렇게 며칠 고생을 한 뒤, 커피를 안 마신 날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커피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되자, 이제는 밀가루와 과식, 빠른 식사가 문제였다. 도대체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증상이 극에 달했을 때는 밀가루는 쳐다도 안 보고 건강식으로만 극소량 먹었는데도 하루 종일 신물이 올라왔다. 더 이상 안 되겠어서 병원을 찾아갔다.
너무나 겁쟁이라 위내시경은 한 번도 시도해 볼 생각을 못했는데, 내과에 가면 내시경을 하자고 할까 봐 두려움에 병원 방문을 피했다. 그러나 다행히 위내시경 없이 내 증상만 듣고도 약 처방을 해주었고, 약을 먹자 바로 좋아졌다.
당연히 증상 완화를 위한 노력도 했다. 밀가루는 최대한 먹지 않았으며 먹어도 소량 먹었다. 과식은 이제 위가 줄었기 때문에 자연히 끊게 됐다. 천천히 꼭꼭 씹어먹지 않으면 빨리 먹게 되고, 소화가 잘 안 되는 상태로 음식물을 삼키기 때문에 아주 잘게 씹어서 먹고 있다.
역류성 식도염에 우유도 좋지 않다고 해서 디카페인 카페라떼도 어쩌다 가끔 한 번씩 먹고 있지만, 음식 제한을 하며 좋은 일도 있다. 자동으로 다이어트가 된다. 예전엔 매일 당기던 햄버거와 피자, 각종 빵 등 밀가루 음식에는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자연히 먹고 싶지 않아 졌다. 밀가루 러버였던 나에겐 기적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용하다. 여러 질병에 대한 데이터가 쌓이고 각 질병에 대처할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다. 자, 와라 질병아! 되도록이면 이미 왔던 것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