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인생의 소머리국밥은 있다, 반드시.

by 루시엘다

길고 길었던 지난 추석 연휴에 여행을 다녀오면서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 먼 여행길에 오를 때면 새삼 우리나라 고속도로 휴게소의 위대함을 느낀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주로 먹거리 때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뜨끈한 소머리국밥을 먹으며 소의 머릿고기까지 허투루 버리지 않는 한국인의 알뜰살뜰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나는 시간 낭비를 싫어한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아니면 남들이 보기엔 쓸데없어 보여도 나름 힐링의 시간을 갖는다거나 하며 시간을 알뜰살뜰 규모 있게 쓰는 것을 좋아한다.

인생을 살다 보면 일정 기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낸 것 같아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나도 한 때 내 삶의 특정 기간을 그렇게 느낀 적이 있었으나, 머릿고기까지도 국밥을 만들어 먹는 소머리국밥처럼 인생의 경험은 하나도 버릴 데가 없다는 걸 깨달은 뒤로는 그런 생각을 멈추게 됐다.

희한하게도 첫 번째 직장에서 배웠던 것들, 특히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들던 것들이 퇴사 후에 도움이 됐다. 참 시답잖아 보이고 귀찮았지만 매일 해야 했던 일들이 내 성격을 더욱 꼼꼼하게 만들었고, 다음 직장으로 이직할 때 장점으로 작용했다. 마치 점조직처럼 흩어져있던 자잘하고 하찮은 경험들이 모여 다음 스텝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굵직한 선을 이룬 것이다.

아예 다른 직종이었던 두 번째 직장 생활은 정말 힘들었지만, 꼭 해보고 싶던 일이었기에 고작 6개월도 안 되는 시간을 몸담았지만 그때의 경험은 내 인생에서 '잘한 일 Best 3'에 든다.

누가 봐도 시간 낭비이고, 오래 버티지 못할 길이라고 해서 도전해 볼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평생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뛰어들어 볼걸'하는 아쉬움을 안고 살았을 거다. 어차피 인생은 한번뿐이고, 가능한 선에서 원하는 것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겨가는 것 역시 인생의 재미다.

미로 찾기와 같은 인생길을 돌고 돌아 Exit 화살표에 닿기 전까진 누구도 자기 인생에 대해 '망한 인생'이란 꼬리표 달지 않길 바란다. 현재의 역경과 고난이 혹은 시간 낭비 같았던 일들이 인생길 중의 어느 날,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여겨졌던 소머리로 만든 맛있는 소머리국밥이 될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다.

고속도로 휴게소를 최종 목적지로 삼아 여행을 떠나는 이는 없다. 하지만 고속도로 휴게소는 반드시 필요하고 거쳐가야만 하는 곳이다. 도로 위에서 예상치 못하게 차가 꽉 막힐 수도, 동승자와 싸울 수도, 더 나쁘게는 사고가 날 수도 있지만 최종 목적지를 향해 멈추지 않고 나아가다 보면 우리 인생에서 뜨끈한 소머리국밥을 반드시 만난다. 국밥과 소떡소떡을 몇 번 먹다 보면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내 인생의 국밥 재료가 될 버려질 시간들과 앞으로 낭비될 모든 것들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해보려고 한다. 어떤 것들이 맛 좋은 재료가 되어 깊은 국물 맛을 낼지 알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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