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낯선 음식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은 편이다. 물론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데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입맛에 맞을지도 모르는데 편견으로 인해 먹지 않는 음식이 많다.
대표적 예로 고수, 양꼬치, 염소탕 등은 누군가는 환장하고 먹는 음식들이 나에게는 쥐약이다. 마라탕도 그중 하나였는데, 음식에 대한 호기심이 들기 전부터 '마라탕집은 위생관리가 별로더라', '마라 때문에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다' 등 카더라 통신에 의해 선입견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마라탕의 유행이 한참 지난 후에 마라탕을 맛보게 됐는데, 처음 내 입맛을 끈 것은 마라탕이 아닌 함께 곁들여 먹었던 꿔바로우였다. 그 집이 유독 꿔바로우 맛집이었던 덕분에 마라탕에 대한 첫인상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았다.
물론 국물에 땅콩소스를 넣는다는 사실이 조금 충격적이기도 했고, 향이나 맛이 낯설긴 했다. 어쨌든 마라탕은 생각보다 먹을만한 맛이었고, 무엇보다도 마라탕과 함께 먹는 꿔바로우가 가히 환상적이었다.
그렇게 꿔바로우를 먹기 위해 마라탕집에 몇 번 가다 보니 마라탕의 맛에도 서서히 눈을 떴다. 마라탕은 중독성 있고 매력적인 음식이었다. 처음엔 거부감이 들던 마라 향과 땅콩소스 냄새에 점차 익숙해졌고, 내 입맛에 맞는 토핑을 골라 먹을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다.
우습게도 마라탕과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선입견으로 인해 생각도 하지 않았던 일들을 새롭게 보는 눈이 열렸다. 어쩌면 내 두려움이나 편견으로 피했던 일들이 사실은 내 취향이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행히 내게는 (한국인 수명 평균치로 봤을 때)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 뜻은 아직 새로운 일을 접해볼 기회가 제법 많이 남았단 뜻일 거다.
때로는 내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보기도 하고, 내 마음이 당장은 원치 않는 일일지라도 한 번쯤 부딪혀보려고 한다. 어쩌면 마라탕이 숨겨진 내 입맛을 일깨워준 것처럼 새로운 도전이 숨겨진 나의 무언가를 깨워줄지 모를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들은 도전을 꺼려하고, 몸을 사린다. 나도 그렇게 사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도전에 대해 움츠러드는 건 본능적인 반응일 수 있다.
하지만, 내 앞에 남은 생은 너무나 길고, 내게 다가 올 기회들도 많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데, 내가 살아본 경험치로 미루어보면 지나간 인생은 짧고, 지금 내가 처한 인생은 길다.
길면서도 짧은 인생길에 마라탕 재료 고르듯 먹고 싶은 토핑만 골라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원하는 것만 골라 먹는다고 꼭 좋은 결과로 귀결되지도 않는다.
주어진 길을 가되 처음 본 마라탕 재료를 넣어보는 마음으로 두려움과 낯섦에 나를 던져볼 때 나의 진가가 발휘될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다음번 마라탕집 탐방에서는 한 번도 넣어본 적 없는 재료들을 한 번 넣어보려 한다. 어쩌면 제대로 망한 마라탕 같은 맛이 날지도 모르지만, 그러면 어떤가? 인간이란 잘못 들어선 길에서도 교훈을 얻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