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일기 006. 비엔나 소시지 같은 신앙생활 하기

by 루시엘다

신앙생활을 하며 가장 어려운 점 가운데 하나는 주일 예배에서 채운 은혜를 쏟지 않고 한 주간동안 잘 유지하는 것이다. 마치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를 쏙쏙 빼먹듯이 끊기지 않는 연속적인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해본 분들은 아마 잘 아실 것이다. '받은 은혜를 쏟지 않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은혜? 그게 뭐예요? 먹는 건가요?


모태신앙으로서 처음 모교회에 다닐 때에는 은혜가 어떤 것인지도 몰랐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은혜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하심으로 현재 교회로 온 뒤, 성화가 무엇이고,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씩 맛보면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어떤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배우고 있다.

교회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일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나서면서 교회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탄과 다시 팔짱기고 세상 속으로 나아간다고 한다.

이 땅에 발 딛고 살며 세상 속으로 나아가지 않고 살 방법은 없다. 하지만, 사탄이 아닌 예수님을 길동무 삼아, 아니 예수님의 말씀을 내 발등의 등불 삼아 살아가야 한다. 이 역시 연속적인 신앙생활과 관련돼 있는 부분인데... 쉽지 않다.

나는 주일에 받은 은혜를 쏟지 않기 위해 나름의 발버둥을 친다. 새벽예배에 나가거나 온라인으로라도 새벽예배를 참석하고 QT를 한다. 이 새벽의 루틴은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심지어 여행을 갈 때도 차 안에서라도 온라인 새벽예배를 드리는 불변하는 일정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그냥 일상이 되어 버리고 나면 QT마저도 그냥 일상 중에 하나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주님 발 앞에 조금씩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력을 키우기 위해 매일 운동의 강도를 조금씩 높이는 사람처럼 매일의 작지만 더 많은 발버둥이 필요하다.

지난달의 경우, '회개'하고자 노력했지만 아직도 눈물의 회개는 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아합왕 같이 죄를 지으면서도 자기 죄를 합리화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자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내게서 발견된다.

이럴 때면, 회개마저도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내 마음이 더욱 비참해지고, 간절해져야 하는데 온전히 내 노력으로 되는 영역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하나님께서 조명 스위치를 켜주시는 것처럼 어떤 스위치가 눌려야 '탁'하고 회개가 되는 걸까?

지금도 초신자이지만, 신생아에 가까웠던 초신자였을 때를 떠올려보면 내 죄가 들보처럼 보이고 남들의 죄가 티끌처럼 보이는 회개의 경험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 안의 교만도 보이고, 사랑 없음도 모두 보이지만 이것들이 죄인 줄 알면서도 진정한 회개가 되지 않는다는 게 스스로도 답답하다.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 알기 위해, 이 글의 제목처럼 연속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과 구별된 자로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나름의 순종의 원칙을 적어보고자 한다. 나와의 약속이며, 하나님 앞에 드리는 다짐이다.

- 미디어 제한
집안일 할 때 쓸데없이 연예인들 나오는 유튜브 보는 것 제한

- 분노
화나는 일이 있거나 주변 사람을 판단하게 될 때, 바로 회개하고 부정적인 감정들 거절하기

이 외에도 구별되어야 할 것들이 셀 수 없이 많겠지만, 요즘 생각하고 있는 건 이 두 가지다. 더 많은 순종의 원칙들을 떠올려주실 줄 믿는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살이 찌는 음식들을 끊어야(최소한 줄여야) 하고, 망가진 몸을 되돌리려면 고쳐야 하는 습관들이 있다. 내 몸과 마음을 교정하고 돌이키기 위한 방법으로 순종이 원칙을 지키고자 한다.


나 혼자 힘이 아닌, 성령의 도우심이 있을 것임을 확신하기에 감사와 겸손으로 오늘도 작은 몸부림을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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