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거린다는 말이 자주 쓰이게 된 이후로 내 삶에도 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오글 모먼트가 많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가장 오글거릴 때는 늘 티격태격하는 편인 동갑내기 남편과 '서로를 무척 애끼고 사랑하는 부부사이'의 바이브가 나올 때다.
이상한 일이다. 서로 사랑하고 행복할 때를 즐기고 기뻐해야 하는데, 요상하게도 그런 때 오글거리고 나랑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 든다. 티격태격하는 우리의 모습에 이미 적응이 되어 버린 걸까?
남편은 '행복 불안증'을 안고 사는 남자다. 이게 무슨 질병이냐 하면, 오히려 행복하고 평안할 때에 더 불안을 느끼는 거다. 아마 '인생이 이렇게 평탄할 리 없는데?'라는 생각이 디폴트값으로 깔려 있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도 오글거림으로 다가오는 행복 불안증 증세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전, 남편의 그런 모습은 답답함으로 다가왔다.
저 남자는 왜 행복해야 할 때 누리지 못할까?
하지만, 이런 증세가 나에게도 있다는 걸 요 며칠 깨달으며 원인을 찾던 와중 성경 말씀을 통해 답을 얻었다. 사람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낙심하기도 하고, 포기하며 체념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내 삶의 아주 작은 영역부터 큰 영역에 이르기까지 돕기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믿음이 없는 자는 자기 힘으로 산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신앙이 있는 자들도 대개 자기 힘으로 산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싶다고 입술로 고백은 한다. 심지어 그것이 이로움도 안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
불안하고 걱정될 만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하나님께 묻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방법을 찾는다. '투잡을 뛰어볼까?',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볼까?'하는 식이 방법 말이다.
어찌 보면 늘 눈에 보이는 세계 안에서 본능을 따라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이는 당연하면서도 이성적인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십자가에 나를 못 박기로 한 신앙인이라면 그 방법은 지름길을 지나쳐 아주 먼 길로 돌고 돌아가는 방법이다.
이집트에서 가나안까지의 물리적 거리는 2주에서 한 달 가량 걸으면 되는 거리라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을 걷고 걸었다. 왜 그랬을까? 이스라엘 민족이 어마어마한 길치여서? 스마트폰이 없어서?
나는 왜 하나님 말씀에 곧이곧대로 순종하지 않는가? 성경 말씀을 몰라서? 교회의 리더들이 잘 이끌어주지 않아서? 신앙의 실패는 남 탓을 할 수 없다. 산처럼 높아 보이는 문제 앞에서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 못지않게 고집 센' 나 때문이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구원을 주신다고 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면 예수님을 빼고 완벽한 인물은 없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노아, 모세, 다윗, 솔로몬 등 성경이 걸출한 인물들에게도 흠결이 있었으며,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한 한낱 인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능력으로 살고자 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삶의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기 위해 노력했던 자들이다.
지금부터라도 기도의 자리, 말씀의 자리를 찾아 내 보금자리 삼아야 한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그만 의심하고, 내 힘을 모두 빼야 한다.
세상에 몸 담고 사는 인간이기에 자동으로 내 힘을 빼고 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힘을 빼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을 잡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을 뒤로하고, 성령께서 일하실 수 있도록 내 삶의 주인의 자리를 내어드리자. 나의 상황을 솔직하게 아뢰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나를 도우실 것이다.
행복 불안증의 유익이 있다. 인간은 모든 것이 완벽한 때가 아닌 불행한 때에 비로소 하나님을 찾는다. 그때에야 마음속 맨 뒷자리에 앉혔던 하나님의 얼굴을 뵙기 원한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려고 발버둥 쳐봐야 소용없다는 걸 그제야 깨닫는다. 이것저것 해봐야 결국 하나님 손바닥 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심에 감사하며, 오늘도 나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올려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