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님아, 그 샌들을 단종시키지 마오.

by 루시엘다

인생을 살면서 어떤 신발을 신는가는 참 중요하다. 다소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특히 발에 예민한 나의 경우 발의 편안함이 하루의 편안함과 직결된다.
발이 편한 신발을 신었을 때는 낮 시간을 보낼 때도 편안하지만, 신발을 벗고 난 후 저녁 시간이 되면 확연히 차이가 느껴진다. 불편한 신발을 신었을 땐 '다시는 저딴 신발 같지도 않은 걸레짝을 신지 않으리' 다짐하곤 한다. 그치만 막상 냉정하게 버리기엔 또 아까워서 내치지 못한 신발들이 내 신발장엔 아직 그득(까진 아니고 몇 켤레)하다.
자고로 신발이란 비싸다고 편한 것도 아니며, 싸다고 불편한 것도 아니다. 가격을 떠나서 왠지 모르게 오래 걸어도 오래 걸은 것 치고 '이 정도면 선방이다' 싶은 신발이 분명 있다. 그런 인생 신발을 만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편이다.
긴 시간 동안 신발 유목민의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마트에서 편안해 보이는 디자인의 샌들에 끌려 시착을 해보게 됐다. 몇 걸음 걸어보니 느낌이 온다. 오, 제법 편안-한데? 너 내 반려신발이 돼라!
걱정이 많은 나는 이런 좋은 신발이나 물건을 만날 때 가장 먼저 '단종'을 두려워한다. 이름 없는 중소기업의 제품인 이 샌들을 마지막으로 회사가 문을 닫게 되지는 않을까 싶어 전전긍긍한다.
돌이켜보면, 어렸던 시절의 나는 늘 나와 딱 맞는 운명적 만남을 기다렸다. 막 대학에 입학했던 20대 초반 시절부터 남들도 다 있는 '남친'이라는 존재를 무형이 아닌 유형의 존재로 만들기 위해 몇 번의 미팅과 제법 많은 소개팅을 해왔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남친이랑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어떤 신기루 혹은 전설 속 오아시스처럼 느껴졌다. 뒤늦게 깨달은 거지만, 당시에는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나를 맘에 들어하는 남자들은 눈에 차지 않았고, 나에게 그다지 관심을 주지 않는 남자들에게 마음이 끌렸다. 관심이 있다가도 상대 쪽에서 긍정적 반응이 오면, 금방 시들해져 버리는 식이었다.
예를 들면, 한참 호감이 갔을 때는 보이지도 않던 촌스럽고 오글거리는 큰 펜던트의 목걸이나 끝단이 다 헤진 청바지처럼 왠지 구질구질해 보이는 모습들이 자동 줌인되어 눈에 들어왔다. 그럴 때는 '이 사람과 다시는, 절대로 만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이 불쑥불쑥 올라오곤 했다.
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타협이라는 걸 배웠다. 사실 내가 너무나 편안하게 생각하는 그 샌들도 잘못 신으면 촌스러워 보일 수 있고 요즘 세대의 세련됨으로 치환되는 '힙함'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그게 뭐 어떤가? 이 샌들만큼 적당히 무난하고 내 발을 편안하게 해주는 샌들은 없었다.
지금에서야 깨달은 건 남친도, 샌들도 남에게 보이기에 부끄럽지 않은지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다. 지금의 나는 남에게 보여지는 무언가보다 내가 추구하는 게 무엇인가를 중심으로 살고 있다.
이렇게 살고 보니 삶이 조금은, 사실은 꽤 많이 심플해졌다. 다양한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여기저기 살펴야 할 눈치가 많았지만, 지금은 내 눈치만 잘 살피면 된다. 남들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는 것은 인생의 결정들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물론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나저나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내 소중한 샌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점점 낡아가고 있다. 혹시라도 운이 좋게 샌들 사장님의 연락처를 알게 된다면 여기 당신이 만든 샌들이 단종될까 노심초사하는 여성이 있노라고, 제발 단종만은 고려하지 말아 달라는 읍소 문자를 넣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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