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인생의 시절 음료

by 루시엘다

나는 달다구리 헤이터다. 이게 무슨 뜻인고 하니 당뇨병 가족력 때문에 단맛을 멀리하다 보니 자연스레 액상과당과도 거리 두기를 하게 됐다. 영양성분표시에서 당류가 15 이상일 경우 마시지 않고, 카페에 가도 당연히 액상과당이 들어간 음료는 거들떠보지는 않는다.
그런 내가 요즘 내가 주 1회 빈도로 마시는 정말 꽂힌 음료가 있다. 이름하야 공차 피스타치오 밀크티. 공차의 특장점은 내가 원하는 당도와 얼음양으로 음료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너무도 사랑하는 피스타치오 밀크티는 당도 0에 얼음양은 그대로, 펄을 추가한 나만의 음료다. 당도가 0이어도 단맛이 나기는 하니 무늬만 당도 0인 것 같기는 하지만, 무액상과당 인생에서 이 정도 일탈을 괜찮지 않나 하는 자기 합리화로 주 1회 내 밀크티와 상봉하고 있다.
지금이야 달다구리 헤이터로서 당도 0의 음료를 일탈로 마시고 있지만, 지금보다 젊었던 시절에는 그렇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음료, 특히 커피 인생의 시작은 스무 살 때부터였다. 고등학생 때 아무리 친구들이 믹스커피를 마셔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내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후, 친구들과 카페에서 즐기는 카라멜 마끼야또에 눈을 뜬 것이다!
카라멜 마끼야또는 커피의 '커'자도 모르던 내게 신세계 그 이상의 새로움을 안겨주었다. 카라멜 마끼야또를 마심으로 인해 나도 이제 합법적 어른으로서 당당히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것과 커피를 이리도 훌렁훌렁 넘길 수 있다는 것이 매력 포인트였다. 그래서 내게 카라멜 마끼야또는 내 스무 살이다. 스무 살 때 마신 카라멜 마끼야또의 양을 합친다면 목욕물 이상은 되지 않을까?
카라멜 마끼야또의 뒤를 이은 나의 최애 음료는 요거트 스무디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대학 앞의 개인카페에서 마시던 요거트 스무디는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적당히 시큼하여 내 심금을 울리는 음료였다. 그 맛이 기준이 되어 그때와 비슷한 맛의 요거트 스무디를 한동안 찾아다녔으나 아쉽게도 아직 찾지 못했다. 이젠 요거트 스무디는 쳐다도 안 보는 달다구리 헤이터가 됐으니 아마 영원히 그 맛은 찾지 못할 것 같다.
스무 살이 갓 지난 대학생이 카페에서 요거트 스무디를 마시며 친구들과 나누던 대화거리는 단연, 이성 이야기였다. 누가 누구와 cc가 됐다더라는 가십뿐만 아니라 나와 친구의 연애사 역시 요거트 스무디 위로 넘실댔다. 아마 그 맛을 다시 찾지 못하는 건, 요거트 스무디처럼 때론 달달하고 때론 시큼했던 설익은 연애 이야기를 더 이상 나눌 수 없기 때문일 거다.
대학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며 커피 의존증이 생겼다. 현대인들의 동반자 만성피로를 쫓기 위해 믹스커피든 아메리카노든 닥치는 대로 하루에 두 잔이고 세잔이고 들이켰다. 그야말로 커피 없이는 일상생활 불가의 인간이 됐다.
그땐 아무리 커피를 매일 한두 잔씩 마셔대도 카페인에 때문에 잠 못 이루던 날은 없었다. 역시 나이가 깡패였던 걸까. 젊은 날의 바쁜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그때보다 더 나이 들고 시간적 여유가 생긴 나는 카페인과 절연했다.
내 인생의 서사에 수많은 음료가 올라타 있었지만, 지금의 내 반려 음료는 카라멜 마끼야또, 요거트 스무디, 커피도 아닌 피스타치오 밀크티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내 밀크티에 어떤 서사가 담길지 알 수 없지만, 당도 0 임에도 달달함이 느껴지는 그 매혹적인 한 잔에 오늘의 행복을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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