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난생처음 레이벤 썬글라스를 구입했다. 지금도 내가 가진 원 앤 온리 썬글라스다. 오래도록 쓰기 위해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을 선택했고, 덕분에 긴 세월이 지났어도 세련되지도, 촌스럽지도 않다. 썬글라스를 쓰면 눈알을 마음대로 굴리기에 용이하다.
어린 시절부터 이런저런 사정으로 눈치를 잘 보는 어른이 된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잠 잘 살폈다. 이런 나의 성향은 단점일 때도, 장점일 때도 있었다. 그 덕분에 상식적(으로 보이는)인 삶에 나를 맞추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고, 그게 편했다.
청소년 시절 나는 때때로 상식선을 넘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상식의 선을 잘 알았기에 가능했다.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선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쾌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코미디언이 꿈은 아니지만, 함께 있는 사람을 빵 터지게 하는 건 도파민이 도는 일이다.
그렇지만, 결혼을 한 뒤로는 내가 생각하던 상식의 선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됐다. 특히 신혼 때 남편과 나는 서로의 상식선을 (씨게) 넘으며 서로를 몰상식러로 몰아대기 위해 갖은 화법과 화술을 선보였다. 자아가 깨지는 순간들이었고, 동시에 서로의 아니 나 자신의 밑바닥을 처절히 대면하는 시간들이었다. 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두 개의 세계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은 그야말로... 혹시 결혼을 앞둔 분이 있을 수 있으므로 여기까지만 하겠다.
아이를 낳아 기르며, 나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서 허우적댔다. 정보가 너무 많은데 누구 말이 정답인지 알 수 없었다. 꿀팁 아닌 꿀팁과 육아정보들이 넘쳐났지만, 내 아이는 그 집 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정답은 나와 내 뱃속에서 나온 이 아이가 함께 찾아가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살아오며 내가 정답이라고 체크하던 것들이 오답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30년 하고도 몇 년이 더 지난 뒤였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 정답이 아닌데도, 대다수가 고르는 답이니 고르는 오답이 많았다. 아, 물론 누군가에게는 그게 정답으로 여겨질는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의 나와 다르게 오늘의 나는 무작정 넓은 길로만 가진 않는다. 좁은 길이어도 가본 이들이 적기 때문에 그 안에 감춰진 정답을 찾지 못한 건 아닐까?
흔히들 시간을 돌리고 싶다는 말을 한다. 나는 오답을 골랐더라도 그다지 과거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 과거로 돌아간다 해도 결국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아쉬움은 남아도 후회는 없다.
'후회 없는 삶'이란 건 제법 근사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했던 통과의례였다 생각하면 좌절감이 오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이 대견해진다. 일상을 살다가 냄새가 고약한 똥 같은 일이 일어나도 결국 양질의 거름이 될 것을 안다. 당장은 어디에도 쓸 수 없는 개똥 같은 일도 판단을 유보해 볼 만하다.
이제 나는 썬글라스를 쓰지 않는다. 썬글라스의 도움 없이도 내 시선을 감출 수 있는 어른이 되기도 했고, 남의 답안지를 컨닝하며 살기엔 삶이 너무 짧다. 항상 정답을 고르진 못하지만, 오늘도 나의 답에 V표를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