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햇님달님, 쾌락의 민낯을 보다

by 루시엘다

일상의 한 단면에서 예상치 못했던 깨달음을 얻게 될 때가 있다. 어제가 그런 날이었다. 오랜만에 여름휴가 기분도 낼 겸 롯데월드를 찾았다. 햇님달님이라는 어린이용 놀이기구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며, 한껏 행복해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름 소확행 중이었다.
그런데 햇님달님 보호자 좌석에 탄 한 아이의 엄마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처음 놀이기구를 탈 때는 예상보다 무서웠는지 겁먹은 모습이었는데, 두 번째 탈 때는 즐기기 시작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모습은 세 번째였다. 두려워하고, 즐기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엔 그 엄마의 그라데이션 반응이 재미있었으나 그다음에는 인간이 좇는 쾌락의 실체, 그 민낯을 발견하게 됐다.
쾌락은 마치 바닷물과 같다. 영화 연가시의 한 장면처럼 타는 목마름에 고통받는 사람이라면 짜디 짠 바닷물이라도 흔쾌히 마실 것이다. 결과는 뻔하다. 금방 목이 마르게 되고, 당연한 수순으로 이전보다 지독한 갈증을 느낄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신혼 초, 작은 기업에 다니는 외벌이 남편과 살며 아이 키우고 살림을 하다 보니 돈을 쓰는 일이 마치 '죄'처럼 느껴졌다. 사치를 부린 것도 아니고 꼭 필요한 살림살이와 식재료를 사는데도 죄의식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가히 병적이었다.
내 기준에서 단순히 욕심 혹은 쾌락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뭔가를 사고 싶어지면, 고심의 고심 끝에 물건을 구입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외식도 참 좋아하는데, 외식 역시 당시 내 기준에서는 쾌락을 위한 소비로 여겨졌다.
그렇게 짠순이로 몇 년을 살다 남편이 더 좋은 조건으로 이직을 하게 됐고, 나까지 일을 하게 되어 씀씀이가 점차 커졌다. 한두 달에 한 번 외식도 큰맘 먹고 하던 내가 주 3-4회 외식은 우습게 하게 된 거다. 월 1회 외식에도 벌벌 떨던 나는 어느새 올챙이 적 기억 못 하는 개구리가 돼 있었다.
소비습관이 바뀌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짠순이 시절에 비하면 훨씬 누리고 살게 됐는데도 기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목말라진 기분이었다. 물론 원하는 음식을 실컷 먹고, 사고픈 물건을 맘껏 사재낄 때는 즐거웠지만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금세 바람 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졌다.
나보다 더 씀씀이가 큰 사람이 눈에 들어왔고, 그들의 삶과 나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좀 더 넓은 바다를 유영하고 싶었다. 내가 그리도 가고 싶어 하던 그 바다는 알고 보니 우물이었고, 그 너머에는 드넓은 바다가 반짝이고 있었다.
물질의 양이나 쾌락에서 오는 만족감은 지속력이 짧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데 우리가 부러워마지않는 재벌 2세나 인기 연예인, 고위급 정치인들이 마약, 성 관련 사건이나 돈 욕심을 부리다 뉴스에 나오는 것을 보면 저 너머의 바다가 반짝이는 것은 비단 내 얘기만은 아닌 것 같다.
손에 닿을 듯 하나 쉽게 갈 수 없는 남의 바다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 바다에 막상 닿아보면 내가 그토록 그리던 그곳은 신기루였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내 우물의 벽을 높이 쌓고 그 안에만 머물 필요는 없지만, 저 바다에 가서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내 작은 우물에 더 큰 바다로 가고자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생각에 잠겨본다. 나는 왜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가? 그곳은 자유로운 망망대해일까, 바다를 가장한 우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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