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오세요 휴남동서점입니다>, 황보름
엄마의 울먹거리는 목소리를 듣자 민준은 미안해졌다.
그래서 자기는 공부에만 전념하지 못했던 게 후회되는 게 아니라 현명하지 못했던 것이, 이렇게만 하면 무조건 잘될 거라고 광신하느라 이 방법이 맞나 고려해볼 만큼 현명할 수 없었던 것이, 하나의 길만 믿고 달려오느라 다른 길도 있음을 헤아려볼 만큼 현명할 수 없었던 것이 후회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뒀다.
"걱정하지마, 나 잘 지내."
"에휴, 몰라. 엄마는 너를 믿는데, 마음이 좀 안 좋아서 그래."
"알아."
<어서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중에서
'무조건' 잘될 거라고 '광신'했다는 민준의 인생이 짠하면서도,
내 인생도 뭐 달랐을까 싶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10대를 바쳤을 민준은,
좋은 직장에 취업하기 위해 20대 초반 대학시절을 그리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취업은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단추를 잘못 꿴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단추구멍이 없었던 것이었다는 결론에 다다른 민준의 무기력함을 모른다 할 수 있을까?
뭐든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나와 나의 어른들은 믿었다.
일정부분 열심히 해서 얻은 성과가 없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경쟁하는 시스템에서 나는 어쨌든 살아남았었으니까.
그 별것 아닌 결과 하나만을 붙들고, 나는 나에게, 아이에게, 나의 누군가에게,
열심히라도 해야지!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성과를 말해? 라며 '열심히 노력'하지 않는 모든 것을 죄악시해왔을 것이다.
나의 것이 아닌 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한다.
나의 것을 위해서는 여전히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문제는, 그 '나의 것'을 발견해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나의 것'이 고유의 콘텐츠가 되는 세상인데, 나도 이제껏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민준은 '커피'에서 그의 것을 찾은 듯 하다.
내 아이는 '기타'에서 그의 것을 찾으려는 듯 하다.
부모로서 어떻게 말려야 하나를 고민했던 시간이 있었다.
'기타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겠니? 일단 공부를 해서 적당한 대학을 간 다음에 그때 너의 적성을 찾고 기타는 취미로 칠 수도 있잖니?' 라고 정말 말하고 싶었는데, 참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적당한 대학을 나온 부모로서,
'그 긴 맹목적인 노력의 시간동안 나는 나의 것을 잘 찾았던가?' 라는 질문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민준처럼 주저앉아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대로, 아이가 자신의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그 시간을 참아야 한다.
'무작정 열심히 노력'하는 믿음으로 나를 얼마나 소진했는지 잘 알기 때문에, 그 고통의 시간과 뭣도 아닌 결과를 아이에게 굳이 체험하라고 하기는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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