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자 신데렐라>, 리베카 솔닛
(엘라)
집에서 나와도 된다고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요정)
다른 애들 돕느라 나도 엄청 바빠거든. 그러다가 너의 집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어.
또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그러려면 일단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해야 돼.
너는 무도회 날 밤 전에는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없잖아.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는 건 정말 사실이야)
<해방자 신데렐라> 중에서
도와달라고 해도 되는 거였구나...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는 일은 민폐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20대에는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나의 체력과 열정으로 무엇이든 혼자 잘 해낼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무엇보다 난 똑똑했다(고 생각했다).
30대에는 내가 부족하긴 하지만, 아직 짱짱한 체력과 경험이 가미되어 좀 더 노련해졌다는 확신이 있었다. 못할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40대에는 직장에서의 위치도 애매하고, 경제적 자유를 이룬 것도 아닌 나는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터무니없이 부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미성년자인 아이는 내 말을 안듣기 시작했고, 더이상 자립이 불가능한 부모는 질병에 시달리며 내 능력치를 넘어서고 있으며, 직장에서는 상사와 직원들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연습이 필요하다.
"도와줘."라고 말하는 건 어렵다.
내가 버겁다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
나의 마음을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혼자서 뭐든 척척 알아서 해내는건, 내가 해야하는 것의 범주가 좁을 때 가능했을 뿐이다.
나의 노력과 체력과 열정이, 해결가능한 최대 범주 안에서 작동했기 때문에, 막연히 나의 능력이 꽤 대단해 보였던 것 뿐이다.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힘들면, 도와달라고 하자.
그러면, 도와주기 위해 벼르고 있는 '5분 대기조'가 나타날 것이다.
나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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