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예보에 첫 눈이 온다고 했다.
별 보러 가자는 제안을 거절했을 때, 그럼 다음에 예정된 건 기형 혼자만의 약속인 '첫 눈' 이벤트였나보다.
첫 눈 예보가 있긴 했지만, 하늘은 그닥 흐리지 않다. 물론 은숙에게 첫 눈은 큰 의미도 없기에 일기예보를 귀담아 듣지도 않았고, 설사 오늘 오는 눈이 첫 눈이라고 해도 자신과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첫 눈은 결국 밤 10시나 되어서야 진눈깨비 처럼 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이 기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첫 눈이 와. 어서 나와요."
"지금 이 시간에 왜요?"
"왜긴? 첫 눈이 온다니까? 내가 첫 눈 보기에 기가 막힌 곳을 알아요."
"첫 눈이 별 의미도 없지만, 첫 눈이 온다고 해서 왜 제가 선배와 눈을 보러가요?"
"약속 했으니까."
"내가 언제 약속했어요?"
"지난 번에 내가 얘기했는데. 우리 원룸건물 옥상에서 보는 도시 풍경이 너무너무 기가 막히다고 하면서 첫 눈 오면 보기로 했잖아요."
"그런 약속 한 적 없잖아요. 잘 기억해 보세요. 그리고 이 시간에 나가는 건 제 생활패턴에 전혀 맞지 않아요."
"그게 약속이 아니었구나. 난 약속한 건 줄 알았어요. 그래요. 알았어요."
그의 실망한 목소리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은숙은 그와 첫 눈을 볼만한 관계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또 한번의 거절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기로 했다.
며칠 후, 기형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에, 첫 눈이 아니더라도, 또 서울에 눈이 오는 날 학교 후문 민들레카페에서 만나요. 거기를 A로 합시다.'
A?
즉시 답장하기 싫어서, A에 대한 궁금증을 며칠 묵혔다가 문자를 보냈다.
"A가 뭐에요?"
"학교 후문에 있는 그 카페요."
"그 카페가 어디있는지를 묻는게 아니라, A로 하자는게 뭐에요?"
"우리만의 암호라고 생각해요. B도 있어요. 다음에 알려줄게요."
은수는 도무지 이해가 안된다. 왜 기형이 자신과 은수만이 아는 '우리만의 암호'를 만들자는 것인지. 우린 그럴만큼의 친분이 없다.
사진: Unsplash의Ryan St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