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월화수목금, 매일 글을 쓰고 싶었지만…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제 모습을 너무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침대에 붙어 지내며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전업자녀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한 저는, 집안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그냥 쉬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기력하게 하루 종일 침대에서 휴대폰만 들여다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도 이런 나를 보면 화가 나겠다.”
생활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집안일을 돕는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 살갑게 다가가지도 않는 자식.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는 딸을 보며 부모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습니다.
‘쟤는 집안일도 안 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는데, 우리는 어디까지 잘해줘야 하지?’
그런 말을 듣는 것도 이상하지 않겠더라고요. 그러다 흰자가 붉어질 만큼 실핏줄이 터지도록 도파민만 채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내 인생이 너무 안쓰럽다.
이왕 태어난 거, 나도 ‘내꺼’ 라고 부를 수 있는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습니다.
같은 유전자, 고작 두 살 차이, 성별만 다른 우리 집 아드님과 나 사이에 도대체 뭐가 그렇게 다르길래 비교를 당하고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2025년 12월까지 계획했던 전자책 「목구멍의 가시」를 진짜 완성했다면… 지금 침대에 누워 웹툰으로 도파민을 채우는 대신,
“이게 바로 저입니다.”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말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로 책을 낸 사람. 그 책을, 일그러진 나의 그녀에게도, 나를 어린애 취급하던 사람들에게도, 숨지 않고 건네고 싶었습니다.
피해자라는 이유로 숨을 필요도,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사건 이후로 제 시간은 멈춰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음 속에 계속 쌓아두기만 하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무서웠고, 자기방어만 더 단단해졌습니다.
“내가 이렇게 숨는 이유가 있어. 나는 아파. 나는 환자야.”
그 말 뒤에 숨어 살면서도, 정작 삶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말만 하는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내가 죽기 전에 뭘 하면 좋을까?”
그 질문에 대한 제 대답은 늘 회피뿐이었습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젊음을 누리고 싶다… 전부 상대적 비교에서 나온 욕망이었고, 진짜 나의 이야기는 아니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의 얘기가 궁금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인기가 없어도 괜찮아요. 책을 내는 건 생각보다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마신 커피값만 아껴도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핑계와 오만, 게으름을 예쁘게 포장해 어른인 척 하던 제 모습이 이제는 너무 역겹고, 그래서 더 바꾸고 싶습니다.
일그러진 그녀가 임신을 했든,
나를 괴롭히던 사람이 좋은 회사로 이직을 했든,
그들이 나를 잊어버렸든, 아직도 날 몰라보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살아 있고, 숨 쉬고, 알바를 하고,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