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5일 익산시장 출마예정자 8명이 모여 불법 현수막을 걸지 않기로 합의했다.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사람마다 크게 차이는 있다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면 누구는 실천하고 누구는 쉽게 어기는 걸까?
사람은 의식적인 판단으로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습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행한다. 실학자 이덕무는 열상 방언(冽上方言)에 ‘세 살 먹은 마음 여든까지 간다는 삼세지 십팔지(三歲志 八十至)’라는 속담을 옮겼다. 생각이 마음에 꽂히면 아집 속에 살아간다. 세상에는 당연한 것은 없다. 좋은 습성을 가지려면 배려와 절제의 노력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우거진 산은 없다. 물길이 모여 바다가 되듯이 세월이 모여야 한다. 청량한 폭포수를 가리고 있는 긴 가지는 여름에는 그늘을 주지만 겨울에는 눈의 무거움을 이겨내야 한다. 골프라는 운동은 약속과 규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본인 사망 빼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불문율이다. 구습을 바꾸기 어려운 사람은 큰 자극을 받아야 한다. 사람은 그렇게 익어간다.
불법 현수막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전 국토교통부 차관 최OO씨는 협약 다음 날인 10월 16일 ‘익산의 딸, 아들! 고3 수험생의 꿈을 응원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시내 곳곳에 빼곡하게 붙여 놨다. 수험생에게 국토부 장관 지명을 받고, 국회 인사청문회 후보자 검증과정에서 불거진 부동산 문제로 낙마했던 자신을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다.
사상가 정약용은 이담속찬(耳談續纂)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삼세지습 지우팔십(三歲之習 至于八十)”이라는 속담을 남겼다. 세 살이 넘으면 늦으니 처음부터 좋은 자세를 갖으라는 가르침으로 교육과 습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구다.
동서양 현자 가운데 처형당한 사람은 동양은 거의 없고 대부분 서양 사람들이다. 서양은 주군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려 들었고 동양은 모나지 않은 삶을 살아서 그렇다.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 전 청와대 정책 실장 장하성을 보면 생각이 많다. 18대 대선에서 안철수 후보의 멘토로 활동했고, 19대 문재인 정부에서는 경제, 사회, 노동 부문의 실세로 중용됐다. 2018년 5월 한국 경제신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 있는 공직자를 조사한 적이 있다. 조사대상 140명 중 44.3%가 경제 정책에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1위로 장하성을 뽑았으나 직무 수행 평가는 5위였다.
청와대 경제 실장 자리는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연주자와 같다. 오보에 연주자가 440Hz ‘라’ 음 하나를 불면 모든 연주자는 그 음에 맞춰 음높이를 맞춘다. 국가 경제는 경제 실장의 목소리에 따라 조율된다. 결과적으로 장하성의 기준 음 설정은 잘못됐다.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된 갭투자에 맛 들여진 국민은 부동산 시장을 투자의 장으로 봤고 청년들은 영혼까지 끌어들여 투기했다. 부동산 정책실패는 촛불 정신을 완벽하게 망쳤다.
대한민국 엘리트 계층은 사회에서 누리는 만큼 책임 의식이 없다.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하면서 장하성의 죽은 지식에 대한 책임을 묻고 자연인으로 돌려보내야 했는데도 중국 대사로 보냈다. 서민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하려는 노력도 진정성도 보이지 않는 인사다. 대한민국은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이다. 대통령은 감사와 고마움의 대상이지만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질 사람에게 책임을 묻고 머리를 숙여야 국민은 진정성 있는 사과로 느낀다.
삶의 질이 높아지면 도덕성도 높아져야지 혜택만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사고를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정책도 사람도 그렇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어리석거나 비겁한 일이 된다. 정리할 수 없고 정돈이 안 된 정책이나 사람은 버려야 역사는 발전한다.
2021년 11월 3일 새전북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