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설날, 정월대보름, 추석을 3대 명절이라고 한다. 음력 1월을 정월이라고 하는데 세시 명절 가운데 2개가 있다. 설날과 정월대보름이다. 설날은 한 해가 시작되는 날이고, 정월대보름은 농사를 시작하는 날이다. 설날부터 이어진 놀이가 대보름에 가서 절정을 이뤘다.
설날 아침에 첫닭이 울면 마을 청년회나 부녀회에서 복조리를 팔러 다닌다. 정가가 없이 주는 대로 받는다. 열쇠 꾸러미 쥐고 있는 안주인은 복조리 값을 넉넉하게 주고 조리 한쪽에는 돈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는 도토리묵을 올려 집 안에 걸어 놓는다. 이후 차례를 지낸 뒤에 세배한다.
절을 할 때는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덮는다. 그때 손의 위치가 중요하다. 이것을 기대라고 한다. 세배는 공경하는 마음을 갖고 여자는 오른손, 남자는 왼손이 위로 겹친다. 흉한 일에는 손이 반대다. 웃어른에게 부부가 절을 할 때는 절 받는 쪽에서 볼 때 여자가 왼쪽 남자가 오른쪽이다. 여자의 손은 눈썹 위까지 가면 된다. 시선은 다소곳이 방바닥을 향하면 된다.
동네 공터에서 남자들은 윷놀이, 여자들은 널뛰기를 남자아이는 연날리기한다. 농악패들은 동네를 돌면서 풍악을 울린다. 마을 집집마다 마당과 부엌을 돌면서 악귀를 몰아내고 복을 담아준다. 집주인이 술상을 거하게 내놓는다. 술 한잔에 덕을 두 배로 쌓는다. 곱사등이 놀이를 하고 소쿠리에 비벼 먹는 밥맛은 일품이다.
늦은 밤 잠자리에 들면 야광귀가 세상 구경하러 온다. 야광귀는 신발이 없다. 신발을 신으면 낮에도 다닐 수 있는데 밤에만 다닌다. 이 집 저 집 토방을 누비고 돌아다니다가 좋은 신발 있으면 신고 간다. 아무 신발이나 가져가는 것은 아니다. 버릇이 없고, 함부로 신발을 다루는 아이들 것만 가져간다. 신발을 잃어버리면 1년 운수가 사납다는 설이 있다. 금줄을 쳐져 있는 집이나 체를 걸어 놓은 집은 야광귀가 근접하지 못한다. 첫닭이 울면 하늘로 올라간다. 설날의 들뜬 마음은 야광귀로 가다듬는다.
정월대보름 아침에는 어린아이나 키가 작은 사람은 먼저 대문을 출입하는 것을 삼갔다. 농작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는 속설 때문이다. 복이 나간다고 마당도 쓸지 않았고 방안에 빗질할 때도 복이 들어오라고 밖에서 안으로 쓸었다. 아침은 오곡밥을 먹고, 부름 하나를 깨물어 껍질을 마당에 버린다. 액을 보내는 힘을 키우는 음식이 오곡밥이고 부름은 더위를 쫓고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는 풍습이 있어서다. 어른들은 귀가 잘 들리고 좋은 소식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귀밝이술을 마신다.
조반을 먹고 여인네는 설거지하고 어른들은 연을 만들어 날린다. 연이 정점에 오르면 연줄을 끊어 세상 밖으로 보낸다. 희망이나 소망을 쓴 꼬리가 달려있다. 집안 정리한 노소는 아랫목에 발을 뻗고 이야기꽃을 피우고 어린아이가 다리를 밟는다. 열두 다리를 밟아야 횡액을 면한다는 다리 밟기다. 청년들은 마을 동산에 올라 나무틀에 짚을 씌워 달집을 만들어 둔다. 저녁 식사에 김으로 쌈을 한다. 보약을 먹는다는 뜻으로 보쌈이라고도 하고, 명이 길어지라고 명 쌈이라고도 한다.
보름달이 떠오르면 달집에 불을 붙인다. 툭툭 소리가 나면서 탄다. 잡귀와 액을 쫓는 소리다. 남자아이들은 망우리를 돌리고 여자아이들은 달님보고 소원을 빈다. 정월대보름에 하는 풍습은 횡액을 면하는 놀이와 금기로 다 의미가 있다. 찬물과 비린 것을 먹지 않고 집에서 키우는 개는 밥을 주지 않았다. 칼질도 하지 않는다. 보는 사람마다 ‘내 더위, 네 더위’ 하며 더위 파는 것은 고난 속에서 잠시 웃어보자는 평민들의 작은 퍼포먼스다. 달이 두텁고 얇음에 따라 흉년과 풍년을 점쳤다. 나무도 열짐 밥도 열 그릇 먹는 날이라 하고 동네방네 밥 얻으러 다녔다.
소는 걸음이 느려도 만 리를 간다고 한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살아왔다. 수양버들로 터널을 이루던 전군가도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가로수 수종이 벚나무로 바뀌었다. 설도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에 나라도 빼앗기고 명절의 지위도 빼앗겼다. 1985년에 이르러 ‘민속의 날’로 명칭이 바뀌어 공휴일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풍습을 가진 중국,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지는 연초에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다. 우리는 세배받으러 자식 찾아간다. 편한 데로 살면 안 된다. 격식을 갖추어야 한다. 설에서 시작하여 정월대보름에 끝나는 놀이와 행사를 시대에 맞게 재구성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2021년 2월 24일 새전북신문 기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