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에 “여래가 설하기를 나의 법문은 뗏목의 비유와 같다.”라고 했다. 부처의 가르침도 가르침이 아닌 것도 버려야 한다는 것으로 부처의 법문이 뗏목이고 금강경이 바로 뗏목이라는 것이다. 본래 사람의 본성을 가르치는 손가락 같은 것으로 공에 집착에서 벗어나 나도 버리고 이 가르침도 버리고 공(空) 또한 버리라는 것이다. 공하다는 것은 쓸모없는 것도 아니고 무의미하다는 뜻도 아니고 헛된 뜻도 아니다. 그래서 금강경은 가르침을 전달하는 뗏목과 같다고 했다.
8월 초 서울이 아수라장이 된 날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일상을 즐겼고, 대통령이 퇴근하고 비서실장과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찬을 곁들인 술자리를 가졌다고 한다. 폭우는 천재지변으로 어찌 못하지만 대처하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국민은 끝을 모르고 치솟는 고물가와 밥상 물가에 아우성치는데 손을 놓은 듯이 보이고, 코로나 환자는 매일 십만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상황에서 과학 방역은 대책 없이 자연 면역을 기대하는 것처럼 보여 국민은 각자도생 살림법을 학습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대통령 측근과 여당 대표의 권력다툼은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비대위 1차 가처분 전투에서 완승한 이준석 대표의 첫 공식행사로 대구 떡볶이 페스티벌 참석하여 의자에 앉아 다리 벌리고 담소하는 사진을 8월 28일 자 조선일보가 보도하고, ‘국민의힘’은 전열을 정비한 후 새로운 비대위를 구성하여 직무대행을 임명했다. ‘식구가 많은 집은 소화제 하나도 눈치를 보아 먹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준석은 ‘직무대행 무효’와 ‘비대위원 무효’ 등 2차 가처분 신청을 시작으로 3차(전국위원회 소집을 막아달라)로 태클은 계속된다. 도달해보면 필연적으로 누릴 줄 알았는데 상황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2022년 8원 19일 중앙일보에 시루섬 일화가 게재됐다. 1972년 태풍으로 남한강이 범람하여 섬이 수몰됐을 때 주민 198명이 지름 5m, 높이 6m 크기의 물탱크에 올라가 노약자와 아이는 가운데에 청년들은 물탱크 테두리에 서로 팔짱을 낀 채 14시간을 버터 생존했다는 이야기다. 그 가운데 생후 100일 된 아이를 안고 있던 엄마 품에서 아이가 숨을 거두었는데도 한 사람만 균형을 잃어도 물에 떠내려갈 상황에서 사람들이 동요할까 봐 엄마는 주위에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의 행동 패턴은 단순히 반응하는 암묵적 공포에서 의식적인 자극에 반응하는 외형적 공포로 확산한다. 경제는 위기와 극단을 달리고 국민의 불안 정도가 스트레스를 더 높여 사회는 공포상황에서 행동적 생리적 반응을 충동시키고 있다. 환율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8월 무역 적자는 95억 달러로 66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는데 9월 1일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날 검찰은 야당 대표에게 출두 통보하여 정국을 흔든다. 대통령은 기자들 질문에 ‘경제와 민생이 우선’이라고 답한다. 권력은 국민을 행복으로 이끌 뗏목과 같다. 추석을 눈앞에 두고 자중자애하여 수해로 고통을 받는 이재민과 고물가, 고금리로 힘들어하는 백성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개발하여 추석 민심을 달래고 신뢰를 회복하는 정치가 되어야 한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 형태를 보이는 북한 공산당의 방사정포 사거리에 서울이 있다. 정치인과 언론은 너무 두려워 공포 자체를 잊었는지 모른다. 공포를 잊었다고 해서 유토피아가 된 것은 아니다. 평화는 깨지기 쉬운 달걀과 같다. 허세 부릴 일이 아니다. 잃을 게 많은 자는 마음속에 불편한 것이 많아도 쉽게 표현하면 안 된다. 정부와 여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기 위하여 남북문제를 정쟁화하면 안 되는 이유다. 속담에 “한사람이 벌어 열 식구 먹여 살린다.”라는 말이 있다. 윤핵관도 이준석도 일찍 가는 손님 뒤통수가 예쁜 법이다. 정치하는 사람들만 정신 차리면 우리나라는 더 잘 살 수 있다.
2022년 9월 7일 새전북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