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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승구 Oct 29. 2022

34. 정치에는 선악이 없다.

소학(小學) ‘경신편(敬身篇)’ 첫머리에 “경신자(敬信者)는 경이지신야(敬而持身也)”라고 소개한다. “경신은 공경하여 몸가짐을 삼가 조심한다”라는 뜻이다. 공자는 논어에서는 “예의에 어긋나면 말하지 말고(非禮勿言) 예의에 어긋나면 움직이자 말라(非禮勿動)”라고 했다. 거짓이 아닌 진실이더라도 조심하라는 뜻으로 속담에 “말이 씨가 된다”라는 교훈은 말은 행보다 불행이 뒤따르니 몸가짐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2022년 9월 8일부터 5박 7일 일정으로 영국에서 시작하여 캐나다로 마무리한 대통령의 순방길은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엘리자베스 2세 조문외교를 타이틀로 한 영국 국장에는 대통령의 참배가 무산됐고 수행할 외무장관은 영국이 아닌 미국 뉴욕에 있었다. 국회에서 국무총리는 순방 중인 대통령의 동선 설명이 부족하고 외무장관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어눌한 답변은 궁색했다. 조문외교에서 조문하지 않은 건 팥소 없는 찐빵으로 항간에는 “상갓집 갔다가 육개장만 먹고 왔다”라는 말이 돈다.     


UN 총회 기조연설은 대북 로드맵을 담은 ‘담대한 구상’은 언급도 없이 ‘자유와 연대’라는 추상적인 구호만 반복함으로써 준비 부실이 드러났다. 대통령실에서 기정사실처럼 발표한 한일 정상회담은 일본 측이 합의된 것이 없다며 만나지 않겠다고 하여 구걸하듯 찾아가 33개월 만에 이루어진 일본 총리와 만남은 30분으로 우리 측은 ‘약식 정상회담’, 일본 측은 ‘간담(회)’이라고 한다. 9월 23일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배석자 말을 인용해 “안 만나도 되는 데 만나줘…. 한국은 일본에 빚을 졌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고 보도했다.     


한미 정상회담은 더 참담하다. 바이든 대통령과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통화스와프, 반도체 지원법 등 굵직한 경제 현안을 정상회담에서 다룬다고 대통령실에서 연기를 피웠는데 48초 인증샷에 그쳤다. 퇴장하면서 던진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은 김선한 안보실장이 해외순방 브리핑에서 말한 “이번 순방의 목적은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 국가들과 연대를 강화하고 경제 외교의 기반을 확대하는 데 있다.”라는 취지가 무색했고, 저자세 막말 논란 등 구호만 가득 찬 굴종 외교라고 여론의 뭇매를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MBC의 자막 조작”이라고 대응한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에 육박하고 주가지수는 2,200선이 무너지는 경제 위기에 전기 수도 가스요금 등 공공요금을 줄줄이 인상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국민은 대통령 순방에 대한 기대가 컸고 한미 정상회담에서 깊이 있게 경제 현안을 논의할 것으로 봤다. 결과는 대통령실과 외무부의 준비 부족으로 대통령의 외교적 무능만 드러냈다. 9월 28일 국민의 65.4%가 해외순방 결과를 부정적이며 57.6%는 국격을 훼손한 외교 참사로 봤다(넥스트위크리서치). 70.8%가 대통령 비속어 논란에 대통령 사과가 필요하다고 했다(조원씨엔아이).     

국민은 대통령의 마음도 믿고 말도 믿는다. 그러나 마음이나 말은 실력이 아니다. 착하고 실력이 없는 자, 악하고 실력 있는 자 모두 국민을 해친다. 위정자 본의가 아니겠지만 재주가 모자라면 국민은 큰 상처를 받는다. 국민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대통령도 국민도 불행해진다.    

 

블룸버그 통신은 아시아 ‘제2의 외환위기’를 경고하면서 경상수지 적자인 상태에 있는 “한국의 원화, 필리핀 페소, 태국의 밧화” 등을 꼽았다. 정치는 선악이 없다. 누가 얼마나 국민을 평안하게 했냐가 지표다. 대한민국 공무원 시스템은 높은 수준이다. 대통령은 정무직과 별정직 공무원을 신선한 인물로 기용하는 탕평인사 원년으로 삼고, 국가공무원과 함께 정책을 펼쳐나가는 것이 국정 운영의 위험부담을 최소로 줄일 수 있는 길로 보인다.

2022년 10월 7일 새전북신문 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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