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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페달 위에서 만나는 익산의 풍경

by 강승구

속도가 중요한 시대지만, 자전거 위에서는 다르게 흐른다. 서두르지 않고 페달을 밟으면 길 위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이 보인다. 금강을 따라 흐르는 바람, 천 년 역사의 향기가 스며든 유적지, 그리고 자연과 어우러진 농촌 풍경까지—익산에서의 자전거 마실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특별한 여정이다.


웅포 곰개나루에서 시작하는 길은 금강을 따라 이어진다. 강변의 억새가 바람에 춤추고, 강물 위로 부서지는 햇살 속에서 페달을 밟으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이 길을 따라 용성리를 지나 용안면으로 가면, 백제의 흔적이 곳곳에 배어 있다.


라이딩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가족과 함께라면 천천히 달리며 자연을 감상하고,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도시락을 나눠 먹는 것도 좋다. 동호회와 함께라면 속도를 내며 라이딩의 짜릿함을 만끽할 수 있고, 혼자라면 잠시 멈춰 서서 익산의 숨은 풍경을 온전히 느낄 수도 있다.


용안생태습지공원에서는 자전거를 멈추고 수변 데크를 따라 걸으며 자연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도 좋다. 이어지는 길은 함라면으로 이어진다. 조용한 한옥 마을과 오래된 돌담길이 반기는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하다.


금마까지 이어지는 길은 계절마다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봄이면 금강 둔치를 따라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벚꽃길이 분홍빛 터널을 만든다. 가족과 함께라면 꽃길을 지나며 사진을 남기고, 동호회 라이딩이라면 벚꽃비를 맞으며 달리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여름에는 초록빛 들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강변길을 따라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용안 습지의 연꽃이 만개할 즈음이면, 잠시 쉬어가며 연못의 고요함을 즐기는 것도 좋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연꽃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특별한 순간이 된다.


가을이 오면 웅포 강변의 억새가 황금빛으로 물들고, 논에는 벼가 고개를 숙인다. 단풍으로 물든 용화산과 붉게 익은 감나무가 길가를 장식하며, 함라 한옥 마을의 돌담길 위로 은행잎이 쌓인다. 가족과 함께하는 자전거 마실이라면 아이들이 은행잎을 밟으며 뛰어노는 모습이 정겹다.


겨울이면 길 위에 서정적인 정취가 깃든다. 금강 위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함라 한옥 마을의 기와지붕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다. 이 길을 달리며 마주하는 풍경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온 듯하다.


익산에서의 자전거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다.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동호회와 함께하며 라이딩의 즐거움을 나누며,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웅포 입점리고분군을 지나 왕궁리 유적에 이르면, 천 년 전 백제의 수도였던 익산의 위엄이 느껴진다. 한때 왕들이 걸었을 이 땅을 자전거로 달리며, 그 찬란했던 시간을 상상해 본다. 왕궁리 유적지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붉은 기와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과거의 시간을 음미하는 것도 이 길이 선사하는 특별한 순간이다.

느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은 먹거리다. 자전거 마실 도중 허기가 질 때쯤, 금마로 향하면 백제의 미식이 기다리고 있다.


금마의 순두부는 그 역사만큼이나 깊은맛을 품고 있다. 맑고 깨끗한 물로 만든 두부 한 점을 간장에 찍어 먹으면, 단순한 한 끼가 아닌 미식의 여운이 남는다. 곁들여 나오는 정갈한 시골 밥상은 강변을 따라 흐른 땀을 보상해 준다. 자전거 여행에서 만나는 최고의 사치는 어쩌면 이런 소박하지만, 깊은맛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웅포에서 용화산까지 이어지는 길은 빠르게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천천히 가야 보인다. 금강의 유려한 곡선, 고즈넉한 한옥 마을, 천 년을 품은 고분, 그리고 미식이 선사하는 따뜻한 휴식까지.

익산이 자전거 여행지로서 더욱 매력적인 곳이 되려면, 단순한 도로 확충을 넘어 ‘품격 있는 자전거 마실 문화’가 조성되어야 한다. 가족이 함께할 수 있는 코스, 동호회가 모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혼자서도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많아진다면, 익산은 단순한 자전거길을 넘어 품격 있는 여행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언젠가 이 길을 찾는 라이더들이 "익산에서는 누구와 함께하든, 시간을 음미하며 달려야 해."라고 말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2025년 4월 소통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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