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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애향심 부족은 신화가 없기 때문이다.

by 강승구

강대국에는 반드시 신화가 있다. 신화는 단순한 전설이나 역사가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믿음의 서사이며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구심점이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신념으로까지 발전하며, 구성원 모두의 집단의식을 만들어낸다. 이 같은 집단의식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존감, 도전정신을 일깨우는 원천이 되어, 구성원 모두를 강력하게 결속시킨다. 구성원의 단합 없이는 강대국이 될 수 없다. 강한 공동체에는 반드시 강력한 신화가 있고, 이러한 신화는 구성원을 미래의 비전으로 이끌어준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는 그리스 신화는 인류 문명의 시작을 상징하며, 문화적 자긍심을 구성원에게 심어준다. 프랑스는 개성을 존중한 나머지 모래알처럼 흩어진 국가처럼 보이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자유·평등·박애의 대혁명을 이루어낸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프랑스 국민을 결속시켜 난관을 극복하게 했다. 미국의 프런티어 정신은 미지의 땅에서 번영을 창출한 개척정신으로, 오늘날에도 미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일본은 2차대전 때 ‘야마토 다마시(大和魂)’ 신화로 국민을 하나로 묶었다. ‘야마토 다마시’는 원래 '일본 정신', '일본의 기백', '대화합의 일본 정신'이었으나, 메이지 시대 이후 군국주의가 등장하면서 '천황을 위해 벚꽃처럼 활짝 피었다가 미련 없이 떨어지는 일본 정신이 아름답다'라는 정치적 선전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이 신화의 강력한 힘이 일본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켰고, 오늘날 경제 대국이 된 밑바탕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강대국일수록 신화가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신화는 단지 과거를 회상하기 위한 장식품이 아니라,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이제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영남은 삼국을 통일한 화랑의 기상으로, 경주는 신라 천 년 수도라는 자부심으로,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지역 정체성을 형성해 왔다. 이들의 애향심은 지역민의 자존감과 연대 의식, 지역발전을 향한 에너지로 작동하고 있다. 신화는 외부로부터 주입되는 허위의 이념이 아니고 구성원 내부로부터 나오는 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그렇다면 익산은 어떠한가. 경주가 자그마한 시골 마을이었을 때 익산은 고조선의 준왕이 수도를 옮긴 지역이다. 세계문화유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을 품고 있는 백제왕도 익산은 고품격의 역사적 자산과 신화의 원천이 있었음에도 익산 시민의 자부심은 아직도 미약하다. 현실의 어려움에 눌려, "익산은 안 된다"라는 자조와 체념이 일상화되어 있다. 애향심은 있지만, 그 애향심은 서로를 품고 허물을 덮어주는 따뜻함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치열한 경쟁 앞에 멈춰 서버렸다.


애향심의 부족(그것)은 신화가 없기 때문이다. 과거를 잇는 살아 있는 서사,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믿음이 없기에 애향심도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고 있다. 신화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유하는 자존심이며 미래의 지향점이다. 과거와 현재를 미래의 비전으로 이어주는 강력한 공동체 의식이다.

익산에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들이 퍼즐 조각처럼 흩어져 있을 뿐이다. 그 조각들이 하나둘 제자리를 찾아갈 때, 비로소 익산만의 신화가 완성된다. 이제 익산도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맞춰야 한다. 눈앞의 현실만을 탓하기보다, 우리가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신화를 되찾아, 그것을 오늘의 삶과 연결해야 한다. 신화가 되살아날 때 애향심도 함께 깨어난다. 더 이상 신화를 박물관 속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익산은 그 신화를 시민의 가슴 속에서 다시 불러내야 한다. 신화 없는 도시에 미래는 없다. 익산은 이제 쪼개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어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완성해야 한다.

2025년 4월 소통신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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