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

5월의 끝자락

by 김종운

이맘때면 들녘은 보리가 노랗게 익어가는 걸 볼 수 있다. 바람이라도 불면 보리는 황금빛 물결을 연출하듯 출렁인다.

보리밭을 볼 때마다 가슴 가득 추억들이 덩실덩실 춤을 추듯 내 머릿속을 헤집고 되살아난다.

생각해 보면 가난 때문에 가슴 아픈 추억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리운 추억이라 미소를 짓게 한다.

내가 17살 때부터 우리 집은 위의 형님 권유로 닭을 키웠다. 사료를 살 돈이 없으니 밭에 보리를 심어 사료를 대신하기 하기로 했다. 형님의 사고 보상으로 산 모든 밭에 보리를 심었기 때문에 꽤 많은 양의 보리를 수확했다.

보리가 거의 다 익어 갈 무렵이면 걱정이 태산 같이 되었다. 보리를 베는 것도 문제지만 벤 보리를 지게를 져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틀은 꼬박 져 날라야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었다. 하루하고 나니 어깨는 뭉치고 피멍이 들어 형편이 없었다. 누구 하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형님과 나의 몫이었다.


어머니가 보리를 베 보리단을 만들어 놓으면 형님과 나는 지게에 지고 타작하는 마당에 나무단을 재듯 차곡차고 쌓았다.

그때 우리 섬에는 타작하는 기계를 빌려와 공동으로 타작을 했다. 기계가 한대뿐이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들은 없고 어머니와 위에 형 나 셋이서 하니 어쩔 수 없이 동네에서 마지막으로 타작을 하게 되었다. 타작은 밤늦게까지 했다.

타작을 하다 보면 날씨가 변수다. 만약 비라도 내리면 큰일 난다. 일 년 보리농사가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자정을 넘기더라도 타작을 다 하기로 결정을 했다.

그런데 타작하는 사람이 피곤해 못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멈추고 말았다. 펼쳐진 보리단을 다시 쌓아 비가 들어가지 않게 비닐로 덮어야 했다.

형님과 나는 자정이 훨씬 넘는 시간까지 다시 보리단을 쌓다가 단을 받치고 있던 나무가 부러지는 바람에 내가 보리단에 파묻히고 말았다. 부랴부랴 형님이 단을 파헤치고 나를 꺼냈지만 오른손이 나무에 부딪쳐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보리단에 파묻혀 있었으니 보리 가시랭이가 눈과 옷 안에 들어가 눈은 충혈되고 몸 전체는 간질간질하고 미칠 것 같았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거다. 고통을 참고 마무리를 해 놓고 날이 밝자마자 타작을 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다음날 병원에 가서 깁스를 했지만 부러진 손으로 타작을 마무리했으니 빨리 나을 리가 없었다.

지금도 보리가 익어가는 장면을 보면 그때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나도 고생했지만 어머니 형님 모두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사람들이 보리를 다이어트와 건강식으로 많이들 먹는다. 난 아픈 추억 때문인지 아님 어릴 때 많이 먹어 질려서 그런지 아내가 아무리 권유를 해도 잘 먹지를 않는다.

내일 결혼식이 있어 청주에 올라오는 길에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보았다. 그때의 추억들이 다시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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