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여행
어학 연수생들끼리 북경을 여행 가기로 마음을 먹고 계획을 세웠다. 아마 그때가 6월 초 정도 된 것 같다. 사람들을 모집하다 보니 22명 정도 인원이 북경을 3박 4일 코로스 가기로 했는데 지도 교수를 포함시키지 않고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하고 몇몇 학생들이 학교 앞 식당으로 교수님을 초대해 식사를 한 끼 하면서 북경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지도 교수는 기분이 좋았는지 흔쾌히 같이 가자고 했다.
학교 측에는 자기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하고는, 한국 여행사를 통하면 비용이 많이 드니 자기 선배 중에 북경에서 여행사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자기가 알아보겠다고 했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날 저녁은 내가 쏘기로 했다. 목포해양대학교 교수님 내외분 두 분을 포함해 24명이 최종 북경으로 가기로 확정이 났다.
그때 당시 3박 4일 달러로 110불 정도 비용을 지불했다. 연태에서 북경까지 비행기로 도착해 첫날부터 전용 버스를 타고 북경 곳곳에 관광을 하고는 중국 요리 중에서 최고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제일 유명한 오리 요리 식당으로 안내했다. 일명 중국말로 ''(카오야)'' 요리다. 북경에 오리지널 2곳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이라 했다. 오리 요리와 샤부샤부를 먹었는데 중국이 음식을 잘하고 맛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모두를 감탄케 할 정도로 정말 놀랐다.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5성급 호텔인 숙소에 들어갔다. ''마오쩌둥''이 잤다는 호텔이라 더 유명했다. 각자 방을 배정하고 난 교수와 같이 방을 쓰기로 했다.
지도 교수 이름이 전*주 정확히 기억한다. 고향이 하얼빈이고 조선족이다. 나중에 이 교수님 덕분으로 하얼빈도 가게 된다. 그런데 이 양반이 잠깐 나갔다 온다고 하고는 새벽이 다 되어 가는데도 들어오지를 않았다. 그런 와중에 밤 11경에 날 찾는 전화가 왔다. 당신이 김종운이냐? 전*주는 어디 갔느냐? 잘 모른다. 밖에 나가 아직 들어오지 않는다. 알겠다,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 또 나와 전교수를 찾는 전화가 왔다. 뭐라고 말을 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 날 찾는 걸까? 등골이 오싹하면서 무서웠다. 전화를 두 번 받고는 잠이 오지 안 왔다. 북경에서 날 찾는 전화라?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게 아닐까 온갖 생각들이 상상의 날개를 달기 시작했다.
3시가 넘어갈 무렵 전교수가 방문을 열고 술 냄새를 풍기며 나타났다.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보채듯이 물었다. 도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야 왔으며, 어떤 사람이 날 찾는데 이유가 뭐냐고? 그런데 어이없게도 아침에 얘기하자며 신경 쓰지 말고 자란다. 그리고는 교수는 코를 골고 자버렸다. 난 그날 밤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해 한숨도 못 잤다.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한 나의 북경 여행은 조금씩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아침이 밝사오니 북경 도시도 밝아오기 시작했다.
프런트에 내려가 커피와 빵으로 조식을 하고 주변 산책을 했다. 중국 사람들은 집단으로 태극권을 한다. 우리나라 우슈처럼 하는 운동이다.
호텔 주변을 한 바퀴 걷고 들어가 씻고 짐을 챙기고 있는 교수에게 물었다. 그런데 교수는 별일 아니라며 나중에 이야기한다고 하고는 방에서 나갔다. 계속 물어볼 상황도 안 됐다. 이틀째 북경 주변으로 관광을 잘했다. 점심도 한식요리를 시작해 최고급으로 먹었다. 오후에는 만리장성도 갔다. 많은 분들이 가서 느껴겠지만 끝이 없는 성의 길이에 중국 사람들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인상 깊은 곳들을 많이 다녔다. 웅장함과, 화려함 모두를 갖춘 문화제들이 너무 많아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관광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만지 가늠이 안 됐다. 알찬 관광이었다. 저녁에 숙소에 들어와 사워를 하고는 너무 피곤해 난 곯아떨어져 버렸다.
그날 밤에는 다행히 날 찾는 전화는 안 왔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새벽에 잠이 없는 편이라 프런트에 가서 호텔 주소를 적어 달라고 했다. 주소를 들고 택시를 타고 천안문 광장으로 갔다. TV 보면 천안문 광장이 가끔 나온다. 거기에 중국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그 국기 게양식을 보기 위해서였다. 총 3명이 국기를 들고 게양대 앞에서 국기를 단다. 조금씩 올리다가 마지막 안고 있는 국기를 펼치는 장면은 정말 잊지 못할 인상적인 장면이었다. 광장에는 연을 날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연 종류도 얼마나 많은지 혹시 하나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물었는데 파는 상품이었다. 헛물만 켜고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천안문 광장을 한 바퀴 돌고는 호텔로 돌아왔다.
간도 크지!! 혼자서 택시를 타고 천안문 광장까지 갔다 오고 일행들이 하나 같이 놀랬다.
그때는 젊어서 그런지 무서움이 없었다.
삼일째는 북경시내 관광을 한다며 버스 기사가 진주 박물관을 데리고 갔다. 6층짜리 건물이었는데 1층부터 6층까지 모두 진주만 파는 곳이었다. 난 거기서 진주 3개를 샀는데 나중에 이것 때문에 누군가에게 마음에 빚이 아직까지 져 있다. 나중에 이 이야기는 다시 하도록 하고, 오후에는 자금성에 갔다. 가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자금성은 총 9개의 문으로 되어 있는데 첫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용이 9마리씩 그려져 있다. 그다음 문은 18마리, 다음은 32마리, 문을 통과할 때마다 9마리 용을 더해 그려 놓는다. 또한 그릴 수 있는 모든 곳에는 용을 다 새겨 두었다. 자금성은 정말 대단한,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다. 9문을 통과하고 나오면 이화원이라는 호수가 나오는데 난 바닷줄 알았다. 서태후가 자기 아들을 죽이고 왕이 된 후 여름이면 하루에 한 번씩 뱃놀이를 했다는 곳, 엄청난 큰 호수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공호수다.
여기서 북경에서 첫째 날 밤 낯선 사람이 날 찾은 이유를 알았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인이 우리 앞에서 전 교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상황이 심각해 보여 물었는데 나중에 말한다고 했다. 이화원을 빠져나올 때쯤 그 여인은 사라져 다른 곳으로 갔고 난 답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다시 물었다. 도대체 말 좀 해보시라고, 무슨 일이냐고, 그때야 그 교수는 나만 알고 있으라고 말을 했다.
사실은 여행사 선배한데 사기를 쳤다고 했다. 무슨 사기를 쳤는데? 우리가 지불한 돈은 110불 냈는데 실제 든 비용은 한 사람 앞에 250불 정도가 들어갔다고 했다. 선배는 달라고 하고 자기는 돈이 없고 그래서 그 여인 한데 부탁을 했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그 여인은 하얼빈 최고 조직 보스의 부인이었다. 이 보스는 대련 어느 구치소에서 복역 중이라고 했는데, 보스의 부하들이 하루에 한 명씩 면회를 가는 어마무시한 깡패두목이었다. 이 여인이 선배에게 전화를 해 한번만 봐주라고 했다는 거였다. 나중에 기회 되면 꼭 갚겠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래? 너무나 이상하다 생각했다. 지불한 돈에 비해 식당이며, 관광코스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록 좋아 의심은 했었다. 다음날 아침 짐을 챙겨 공항에 가기 위해서 프런트에 있는데 이 선배란 사람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그런데 이 선배란 사람이 교수를 보자마자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내 빰이 맞은 것처럼 어리둥절 어찌할 바를 몰라 선배와 전교수의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업었다.
흥분된 상태에서 말이 너무 빨라 자세히는 못 알아 들었지만 이 말은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야! 개*식아' 돈이 없으면 없다고 하면 될걸 사기를 쳐. "깡패 한데 전화를 해 부탁을 한다고 해결될까?" 이런 내용이었다. 난 정신을 차리고 모두를 호텔 밖으로 내 보내고 두 사람이 조용히 해결하도록 했다. 그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님인데 지금 일어난 상황이 말이 아니었다.
같이 간 일행들 모두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몹시 혼란스러웠다.
그러면서 날 보고 소리치듯 중국말로 김종운이 누구냐며 물었다. 그런데 전교수가 자기하고 얘기하자며 나도 호텔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알고 보니 전교수가 대표자를 날 정해 놓은 것이었다. 이런 나쁜*, 그러니!! 이 선배란 양반이 첫날밤부터 새벽까지 나와 전교수를 찾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지불한 돈이 관광 코스의 비용에는 터무니없으니 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나하고는 말은 통하지 않고, 그런 상황에 전교수는 숨어 버리고 오자마자 열받아 따귀를 사정없이 내려친 거였다. 전교수가 어떻게 해결했는지 선배는 돌아갔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하고는 공향으로 향해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 조용했다.
아무도 얘기할 생각들을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난 어느 날 왜 그렇게 무모한 일들을 계획하고 실행까지 했느냐고? 또 선배 하고는 어떻게 해결했냐고? 진지하게 물었다.
그때 정말 많이 당황하고 무서워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전교수가 말하는 게 멋지다.
너뿐만 아니라 모든 일행들에게 실망시켜 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자기 때문에 망친 게 아닌지 걱정스러웠다고 말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너무 이쁘고 착해 교수로서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고 거였다.
처음부터 선배에게 거짓말로 사기 칠 생각은 아니었고 학생들이라 돈은 없을 테고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면 일단 선배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 나중엔 나머지 비용을 자기가 다 갚을 생각이었는데 선배가 혹시 돈이 떼일까 봐 오버한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아니!! 그래도 나에게는 말이라도 해주고 그렇게 해야지... 어떻게 모두에게 감쪽같이 속이고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우린 그런 도움 원하지도 바라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근데 자기가 그렇게 해주고 싶어서 한 거니까 그냥 넘어가자고 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일행에게 함구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중국 사람들은 의리도 없고, 사기 기질이 많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전교수를 통해서 선입견이 조금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해서 모든 오해는 풀렸다.
아마도 살면서 이런 경험은 흔치 않을 일이다.
교수님 생일날 유학생들끼리 모자 선물을 해드렸다. 모자를 쓰고는 머쓱하게 웃는 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모하고 황당한 여행이었지만 교수님의 통 큰 아량으로 스릴 넘치는 여행을 경험케 한 교수님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