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분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글을 계속 쓰게 되는 동력이 무엇이냐고? 이 질문을 받고 며칠 동안 고민을 해 보았다. 글을 쓴다고 해서 특별히 좋아지고 나아지는 것도 없는데 무엇 때문에 이 행위를 지속적으로 할까? 무슨 마법에 걸린 것도 아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거 같다.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그냥 좋아서 한다. 그렇다고 남들처럼 대단한 문장과 수준 높은 글을 표현하지는 못하지만, 나의 서사를 써 가는 행위가 회복과 치유의 시간이다. 세상이 변화고 주변의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내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삐딱하게 본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정상적이고 온전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관점과 태도가 달려졌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확연히 바꿨다. 생각과 말에는 송곳처럼 직설적이고 독기가 서려있어 나의 말들이 타인에게 상처를 입혔다. 특히 가족들에게 더 많이 그랬던 거 같다. 그래야 속이 시원했다.
생각 없이 했던 말과 행동들, 하지 않아도 될 말들을 이제껏 무수히 많이 했음을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부끄럽게 만들었다. 글들을 통해 덩어리처럼 단단하고 굳어진 생각들이 무너지고 재정립되면서 새로운 생각과 질서를 부여했다고나 할까?
둘째 아이가 방학 동안 어느 기관에서 두 달 정도 근로 알바를 하고 개학이 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그 기관에 계셨던 분이 아파 입원했다는 소식에 인사차 전화를 드린 적이 있다. 첫마디부터 딸아이 얘기로 시작해 끝날 때까지 딸아이 칭찬을 했다. 듣기 좋으라고 조금은 과장이라 의심을 했다. 이 분이 말하길 딸아이에게 아버지 어머니가 어떤 분이 지를 물었다고 했다. 딸아이가 말하길 좋은 부모를 만나 너무 감사하고 고맙다고 했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당연히 자기 부모니까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반문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자기도 아이 셋을 길러봐 아는데 딸아이의 말하는 눈빛에는 진심이 가득 맺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날 난 좋은 아버지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그냥 돈만 벌어 주면 모든 것은 애들 엄마가 다 한다고 여겼다. '누군가 쓴 글들을 탐했고 반짝거리는 말들을 훔쳐 가면서' 쓴 글들이 가랑비에 옷이 젖듯 날 더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었지 않았나, 말하고 싶다.
'나에게 일어난 일은 시차를 두고 누군가에도 반듯이 일어난다고 했던가?''정말로 그렇다면 자기 아픔을 드러내는 일은 그 누군가에게 내 품을 미리 내어 주는 일이 아닐까?' 내가 누군가의 글을 읽고 글을 써 변해가듯이 , 또 어떤 이들이 나의 글을 읽고 본인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 사람처럼 , 삶과 인생이 송두리째 변해가는 기대를 상상하면 꿈꾼다.